눈이 내렸다. 헤어컷 예약시간을 핑계로 저녁 눈길을 걸었다. 눈은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고 우산도 들지 않은 채 나는 눈 속을 걸었다. 처음 생겨난 저녁, 마치 세상에 없던 것이 새롭게 생겨난 것처럼 저녁은 낯설기도 했고, 오래전 거기 그곳 눈길을 걷는 것 같은 기시감에 부르르 몸을 떨기도 했다. 여기저기 창문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노란빛 푸른빛 붉은빛 똑같은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각기 다른 빛, 낮과 다른 형태를 발산하는 창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막 불을 켜는 창문도 몇 군데 보였다. 이제 막 외출에서 돌아온 그들이 스위치부터 찾아 불을 밝혔으리라. 고개를 들어 건너편 아파트 쪽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신기하게도 약속이나 한 듯 여기저기에서 이제 막 불을 켜는 창문들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저녁이 오고 있었다.
골목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로등 빛 사이에는 지상으로 하강하는 눈송이가 부유했다. 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6시 30분이 되려면 10분 정도 남았다. 모자를 뒤집어쓰고 본격 눈길을 걷기로 했다. 미용실을 비켜지나 걷는 중 전화벨이 울렸다. 미용실이었다.
“지금 가는 중이에요.”
“네넹~”
바삐 미용실을 향하려 할 때, 놀이터에는 눈사람 같은 세 사람이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아빠와 아이들. 오래전에 보았던 그림이었다. 눈사람을 만드는 놀이터 아이들을 판화처럼 마음에 새기고 미용실 앞에 섰다. 어깨에 내려앉은 눈을 털고 모자에 내려앉은 눈을 털며 미용실로 들어섰다. 미용실 거울 속으로 나는 여전히 창밖 풍경을 엿보고 있었다. 수은등 아래 몰래 눈이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