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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땡땡 Dec 28. 2019

비슷한 사람과 만나면 연애에 성공하나요?

빅데이터 연애 - 꼭 맞는 사람을 찾아드려요




출처 : TVN 빅데이터 연애


빅데이터 연애란, 데이터를 기반으로 비슷한 사람끼리 매칭 해주는 것이다. 성격은 물론, 외모, 직업도 본인과  맞는 상대를 찾을 수 있으며, 90퍼센트가 넘으면 천생연분을 보장한다.


드라마는 순간을 놓치면 흐름을 잃는  싫어 즐기지 않는 편인데, 다른 일을 하면서 잠깐 정지해두었던 것에 계속 눈길이 갔다. 어쩌면 결혼 정보 회사랑 하는 일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다만, 오히려  마디면 알기 쉬운 객관적인 조건보다 치약을 어디서부터 짜는지와 같은 각자 양보할  없는 내밀한 사정까지 고려할  있는 점이 사뭇 달랐다. 집안일을  끝내고 제대로 감상하는데, 어느샌가 뒤에서 동일한 자세로 누워 같은 방향을 향해 있는 남자 친구에게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의 빅데이터 지수는 얼마나 될까?


'솔직히 30퍼센트도 안될  같은데...'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한  아니었지만 소리 없는  생각에 동감해서인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려  들은 것인지 대꾸는 없었다.


극에 몰입해가던 , 저런 식으로 사랑에 빠지면 실패할 확률이 낮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빅데이터 지수가 높은,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던가.


씨씨였던 L이 떠올랐다. 비슷한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그와는 가장 오래 만났고 잘 맞는 부분이 많았다. 그는 같은 과, 같은 동문 선배로 경상도 사투리를 썼으며 쌍꺼풀이 짙은 눈과 도톰한 입술 때문에 우리는 남매처럼 닮았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이외에도 다이어트에 성공한 늘씬한 체형이었고,   옷에 관심이 많았다. 남들 앞에 나서기 싫어했으며, 여느 대학생들과 달리 음주 가무를 그리 즐기지 않았다. 많은 지인보다 단짝  명과 깊은 관계를 맺곤 했는데, 그래서인지  없는 서로의 이성 친구에 대한 질투가 많았다. 휴일은 집에서 보내기를 좋아했고, 함께 자취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볼 때면 현실도피를 하는 기분이라는 말에 웃으며 공감하곤 했다.


하지만 내가 그를 떠올릴  가장 먼저 따라오는 , 다른 무엇보다 바로 치킨이었다.


그는 치킨을  좋아했다. 어릴  소망이 부모님이 치킨집을 차리시는 거였고, 직장을 가지면  자주 먹겠노라 선언했다. 다소 소박해 보이는  꿈이 귀여웠다.  덕에 데이트를 하는 주말이면  사이좋게 앉아 닭다리를 뜯는 일이 잦았고, 이후엔  아이스크림을 먹던 식습관을 따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주말을 보내게  이후에도, 한번 길들여진 입맛은 쉬이 바뀌지 않았다.


되짚어보면 살아온 환경, 가치관, 생활습관이 대부분 맞아떨어졌고 크게 차이나는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네가 맞니 내가 맞니 반복되는 싸움 끝에 결국 지쳐 헤어졌다. 겹쳐 보였지만 삐져나온 부분이 있었고, 그게 다툼의 씨앗이 됐다. 간극이 처음부터 존재했으나 우리가 보지 못한 건지, 아니면 차츰 벌어진 건지 지금 생각해도 답을   없다.


그래서 빅데이터를 수집하는 게 의미가 있나 싶다가도, 한편으론 그나마 가장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던 건 유사성 덕분이 아녔을까 싶다. 얼마 전 그에게서 연락이 온 것도 그러한 이유가 조금은 작용하지 않았을까. 잘 지내?라는 물음이 미리보기로 떴을 때 '~'로 설정된 이름에 누군지 잠깐 고민했다. 프로필 사진을 통해 몇 년 만에 보는 모습은 오래간만에 소식이 닿은 친구에게 느끼는 반가운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헤어지고 연락이 온 유일한 사람이었다.


타인은 나와 다른 반경을 가지고 있고, 연애 상대 역시 여러모로 내게 낯설 가능성이 높다. 그중에 익숙한 방식의 사람을 만나는 건 휴대폰을 100퍼센트로 충전한 채 여행을 떠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해해야 할 일이 줄어들고, 이해하지 못한 것을 말할까 말까 하는 고민이 줄어들고, 결국 말한 것이 되려 역풍을 맞아 감정싸움이 되어 생기는 에너지 소모가 줄어드니, 더 늦게 방전되지 않을까. 어쩌면 내내 꺼지지 않고 여행을 잘 마무리할 수도 있다. 전 남자 친구도 그런 소모 끝에 연락을 취한 게 아녔을까.


클라우드 정리하다가 어떻게 사나 궁금해서 연락했어.


엄두가 안나 내버려 두다가, 꽉 차 버린 용량에 못 이겨 정리 중이란다. 오래전 비워졌던 내 것과는 다르게 그걸 아직 안 지웠다니, 꼼꼼했던 성격을 생각하면 의외이면서도 어쩐지 괜찮을 뻔했다가 씁쓸해지는 기분이었다. 서로의 근황에 대한 짧지 않은 답문들이 이어졌지만, 긴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오랜만에 친구 만난 거 같아서 반가웠어. 겹치는 지인들이 있으니까 다음에 결혼식에서 보면 인사 정도는 하자. 잘 지냈으면 좋겠다.


우리는 풋풋했던 대학시절을 지나 20대 후반 직장인이 되었다. 현실에서 벗어난 둘만의 공간에서, 에너지의 대부분을 서로에게 쏟을 기량으로 사랑했던 때가 가고 이제는 연애의 할당량을 줄여 다른 곳에 나눠주다 보니 맹목적이었던 그때가 생각이 났을 수도 있다. 나 역시 종종 그랬다.


하지만 그도 나도 다시 충전이 되는 물건이 아님을 알고 있다. 복구 버튼만 누르면 살아나는 클라우드의 휴지통도 아니다. 누가 봐도 남자 친구가 있는 게 뻔한 프로필 사진에도 그가 연락했던 건,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보다 잠깐 옛 생각에 빠졌던 것이고, 내가 반가운 마음이 든 건 둘도 없던 친구와의 추억을 한편에 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빅데이터가 연애의 성공 확률을 높여줄  있다는 데는 동감한다. 하지만 많은 유사성을 갖고 시작했던 우리가 보게   결국 스펙트럼의 끝부분이었다. 처음부터  맞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없던 간격도 점차 벌어지기 마련이다.



지금 내겐 빅데이터 지수로는 매칭 실패에 가까운 연인이 있다. 천생연분인줄 알았는데 점차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6개월 만에 처음으로 언성을 높인 , 서로의 마음생채기를 입히기는 일이 잦아졌다. 사랑하지만   힘들다고 고백했다.


나는 그의 행동이 내 익숙한 반경 안으로 들어오길 바랬고, 그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길 원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바꾸려는 시도는 서로를 지치게 하고, 이해만을 바라는 관계는 무너지기 마련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각자 이해의 범위를 넓혀가면서 상대방이 원하는 방향으로 한걸음 나아가는 것. 자신의 원을 넓혀 교집합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게 20년 이상 달리 살아온 우리가 방전되지 않고 계속 사랑해나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드라마에서는 너무나 다른 두 주인공이 만나 사랑에 빠지고 높은 빅데이터 지수로 천생연분이 된다. 공집합이었던 그들이 점점 포개어졌던 것처럼, 우리 사이에도 교집합이 늘어가길 바란다. 사랑이라는 이유 하나로, 서로의 간격에 노력이라는 끈을 이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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