썅년이 되기 전에 나쁜 년이 되기로 했다.
미안해.
"사랑해."
그의 말이 무겁게 느껴진다. '나도 사랑해' 연인사이에 어쩌면 아주 당연할, 상대가 원하는 명확한 답을 알고 있으나 선뜻 뱉기 어렵다. 이런 나를 모를 리 없음에도 그는 주문처럼 사랑을 말하곤 했다. 마치 자신에게 달라는 듯이. 언제부터였을까. 그를 만나면서 마음속에 점점 미안함이 커지게 된 건.
나는 L을 곁에 두고 싶었다. 나 역시 그를 사랑했고, 함께 일 때 느껴지는 안정감, 편안함, 나를 담은 눈동자에 반짝이는 사랑을 잃고 싶지 않았다. 헤어지면 절대 친구론 남지 않을 거라는 그와 관계를 이어가려면 우린 배우자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장난스럽든 혹은 진지하게 눈을 맞출 때이든, 말간 입술이 결혼을 말할 때마다 나는 웃어넘길 뿐 확답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깨졌다 다시 사귄 기간을 포함하면 4년을 넘게 만났다. 이별을 고하는 건 늘 내쪽이었지만, 누구든 먼저 연락을 취하면 결국 다시 만나게 되었다. 신기한 건 그와 나 둘 다 서로를 제외하면 재회의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다. 길고 짧은 공백 속에서 각각 적잖은 인연과 스쳤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부메랑이 되돌아오듯 우린 서로에게 돌아갔다.
그는 종종 나를 '예비신부'라고 불렀다. 농담인 듯 아닌 듯 장난기가 묻어나는 말에도 나는 이내 화제를 돌리곤 했다. 때론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나 하나뿐이었다는 특유의 저음이 귓가를 또 마음을 울렸지만 마냥 감동할 수는 없었다. 그의 진심에 대한 답을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피할 수 없는 문제를 맞닥뜨려야 했다. 생각할 시간이라는 명분하에 2주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유배라도 온 듯 고요함이 감도는 옥상에서 파란 구름을 몇 시간이고 바라보았다. 그 끝에 내린 결론은 나 역시 그와 가족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다만 그의 역할은 남편이 아닌 오빠였다.
내 머릿속엔 우리의 결혼 생활이 아주 잘 그려졌다. 자주 다투겠지만 그만큼 빨리 화해할 것이고 지금 삶에서 큰 변화 없이 안정적으로 살게 될 것이다. 투닥투닥하며 지내는 여느 비슷한 나잇대의 부부처럼.
그 안정감은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행스럽지 않게도 그 미래가 기대되지 않았다. 연인을 향한 감정이 무엇인지 빈자리가 얼마나 클지와 같은 건 전혀 가늠할 수 없었지만 기대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은 뚜렷했다. 나는 이미 우리의 영화를 다 본듯했다. 결국엔 다 알게되더라도 시작 때만큼은 아직 보지 않은 내용을 궁금해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이제 그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제껏 나는 놓기보다 놓아지는 쪽이 편했다. 스스로는 최선을 다했는데 상대방이 포기했다면 적어도 후회 없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차 힘이 풀려가던 내 손을 언제든 꽉 움켜잡는 상대의 것을 놓는 게 두렵고 자신 없었다. 필연적으로 후회가 따를 테니까. 하지만 처음으로 나 없이도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이니까, 연인이라는 범주에 가두기에는 부족한, 내 20대의 절반을 함께한 사람이니까 나를 끊어내지 못하는 그를 위해 내가 끊어야 했다.
"미안해."
그는 내 친구였을까, 연인이었을까, 가족이었을까.
그를 향한 내 사랑은 어떠한 의미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