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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땡땡 Feb 10. 2020

퇴근 후에 뭘 하시나요?

무언가 해야 할 거 같은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당신과 나.





집 앞에 한 무더기로 쌓인 택배 상자를 안고 나뒹구는 신발들로 빽빽한 좁은 현관으로 들어선다. 박스와 무거운 외투를 신발장 앞에 내려놓고 차가운 물로 바깥공기를 털어낸다. 몇 발자국 안 되는 거리를 지나 맨바닥에 앉는다. 습관처럼 TV를 켜서 채널을 돌리지만 딱히 잡아 끄는 것은 없다. 일단 예능 프로그램의 웃음소리로 집안을 채운다. 휴대폰을 쥐고 침대 위로 올라간다. 벽을 향한 채 누워 평소에 잘 가는 커뮤니티, 인스타그램을 본다. 자신의 행복감을 드러내는 공간. 빠르게 훑어내리면서 그 의도에 맞게 부러워하다가 흥미가 사라지면 소셜커머스를 기웃거려며 생각지 못했던 필요를 만들어낸다. 거의 매일 초특가 표시를 본 건 기분 탓이겠지. 뻔한 상술에 또 속아 넘어간다. 짧지 않은 서핑 끝에 무엇이라도 하나 최저가를 건지면 해냈다는 뿌듯함과 함께 일말의 위안감마저 든다. 구매내역은 보통 의류, 식품, 생필품이 주를 이루는데, 냉동실은 이미 가득 차서 더 들어갈 공간이 없는 게 아쉽고 장롱과 큰 행거 하나를 채울 만큼 옷은 많지만 비좁은 틈 사이로 오늘도 새 식구를 끼워 넣는다. 거추장스럽게 남은 박스를 모아 한편으로 밀어놓는다.





냉장고를 연다. 일하던 중에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웠지만 이맘쯤이면 습관처럼 무언가 찾게 된다. 가짜 배고픔엔 물을 먹으라고 했었는데, 막상 손이 가진 않는다. 많이 부대끼는 건 싫고 포만감을 주면서도 입안이 텁텁한 느낌을 달래기 위해 과일이나 음료수를 집어 든다. 혈당 조절 능력이 떨어진 건지 달달한 음식만 찾는 내게 그러다 당뇨 걸린다고 짐짓 경고하던 친구의 말이 떠올라 뜨끔하면서도 아직은 젊은 나이를 위안 삼는다. 들이키고 나면 조금 덜한 것도 같다. 위가 들어차도 그 느낌이 계속되면 껌을 씹는다. 단물이 빠질 만큼만 씹고 뱉기를 반복하면 어느새 한 통이 비워져 있다.  





10:20 PM

밤이지만 잠들긴 아쉽다. 친구와 카톡을 주고받다가 핑퐁에 있어 손가락만으론 한계가 느껴질 땐 통화버튼을 누른다. 받지 않는다. 다른 이에게도 걸어본다. 역시 부재중.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오늘 일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 보통은 전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오곤 하는데 그럴 때면 익숙하게 별것 아닌 대화를 시작한다. 뭐 하고 있었냐? 어떨 때는 스피커 폰을 켜 둔 채 각자의 일을 하는 게 잠들기 전까지 몇 시간 동안 이어지기도 한다. 세 번 남짓의 시도가 무마되자 다시 하릴없이 집에 들어온 후의 일을 반복한다. 다들 바쁘거나 자겠지. 내일이면 연락을 해올걸 알기에 별 생각이 들진 않는다.





킬링타임

자기 전 매일 하는 거지만 시간을 밀어내는 걸 굳이 이름 붙여주고 싶진 않다. 불을 끄고 눕는다. 이런저런 잡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짜증 나게 정신을 맑게 할바엔 눈 감자 마자 아침이 와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럼 의무감에 머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바쁜 발걸음을 재촉하겠지. 금방 바뀐 신호등을 건너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전속력으로 뛰고 출근 시간에 세이프한 걸 감사할 거다. 일상은 반복된다. 대단하게 살고 싶진 않지만 좀 재미있곤 싶은데. 생계를 위한 현실 속을 지내다 보면 작은 것 하나에도 고단과 두려움은 잘 느껴지는데, 왜 즐거움과 흥미에는 무감각해지는지 의문이다.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이럼에도 열심히, 재밌게 산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운동, 공부, 취미, 글쓰기 등이 이유가 되겠지. 근데 그들 생각의 출처는 내 인스타그램 속에 있다. 거기엔 차마 부끄러워 붙이지 못한 #공허함채우려고발버둥치는중 이라는 태그가 숨겨져 있다. 또 #휴일에심심해서죽음 #종일누워만있음 도 마찬가지. 대신 #호캉스 #카페스타그램 #취미부자 등을 걸곤 했다. 나를 도마 위에 올리고 안타까워하는 척하는 구경꾼들을 위해 의무감에 업로드하곤 했는데 최근 들어 어플을 지웠다. 한결 낫다.





친구가 내 글은 항상 안개가 낀 것 같다고 했다. 제대로 안 읽히는 거냐고 물었더니 그게 아니라 뭔가 막막해서 기운이 안 난다고. 맞는 말이었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답답할 때 혹은 내 안의 폭풍우가 휘몰아쳐서 현실의 누군가에게 해가 될 거 같을 때, 감정을 달래고 나눌 겸 쓴 거니까. 힘나게 하는 거 까진 욕심이기에 바라지 않는다. 그저 같은 걸 느껴본 적 있다면 공감하길 바라고, 공감을 통해 위안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 글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시공간을 넘어서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건 빈 독에 조금씩 물방울이 고이는 일 같다.





퇴근 후에 뭘 하냐면요




집에 들어선 후의 나는, 무언가 재밌는 걸 하고 싶지만 여건이 안되고 그걸 뛰어넘으면서까지 시작할 용기는 없다. 남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 부럽지만 팔다리를 일으키기는 싫어서 일단 늘어진다. 사는 게 재미가 없다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모두가 다 그렇게 산다고. 원래 그런 거라고.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할 거 같은데 막상 하기 싫은 게, 매일 같은 일상을 살면서 웃음엔 무감각해지고 걱정만 느는 게, 아무리 채워도 물이 고이지 않는 게, 원래 그런 건데 처음이니까 그냥 익숙하지 않은 거라고.





3:28 AM

유일한 친구였던 휴대폰을 엎어놓는다. 똑바로 누워 캄캄한 천장을 본다. 혼자만 이 좁은 공간에 남겨졌다는 막막함,

 대신 이 글을 마무리하는 오늘은, 언젠가 어디선가 존재할 당신을 불러본다. 내 아이폰이 시그널의 무전기가 되어 당신과 나를 연결해주지 않을까 하는 상상.

당장은 응답이 오지 않더라도 기대만으로도 이제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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