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9XcBXUVszUQ?si=NGBt7chGNYNoneZm
예전엔 오케스트라보단 솔로(피아노든 바이올린이든) 연주가 더 좋았는데, 잘 다듬어진 하모니를 들으면 경이로워진다. 요즘은 그래서 규모가 큰 합주가 좋다. 거기에 어떤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녹아있을까. 이 연주를 듣다가 그 생각을 했다. 수십대의 바이올린이 하나의 소리를 내기 위해, 저 사람들은 얼마나 자신을 갈고 갈아나갔을까.
나는 왠지 그런 곳에서도 슬픔을 본다. 슬픔은 너무나 여기저기에 있다. 나는 다른 것, 예를 들면 더 큰 무언가를 위해, 자신을 조금 줄이는 모습이 놀랍고도 슬프다. 설령 그 결과가 아름다운 것이라 한들, 슬프지 않은 건 아니니까….
최근 정혜윤 작가의 <아무튼, 메모>를 읽었다. 그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꿈은 ‘아니면 말고’의 세계가 아니다. 꼭 해야 할 일의 세계다. 꿈은 수많은 이유가 모여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일, 포기하면 내가 아닌 것 같은 그런 일이다. 진짜 꿈이 있는 사람들은 꿈 때문에 많은 것을 참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용감하게 선택하고 대가를 치른다."
물론 그 대가를 치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배도 고플 것이고, 아프기도 할 것이다. 때때로 고독과도 결투를 벌여야 하고, 어쩌면 지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꿈을 꾸는 사람은 그런 것들을 대가로 치른다. 다만, 그게 자신이 선택해서 치르는 대가라고 한들, 힘든 걸 힘들다고 말할 수 없게 만드는 현실이 너무 매정하다고 얘기하고 싶다. 해야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하기 위해서, 자신을 조금 줄여나가는 것이 고통을 당연시 해야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너, 니가 원해서 그거 하는거잖아. 그런데 왜 힘들다고 징징대. 그럼 하지마.”
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진작에 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인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꿈을 꾸는 누구에게도, 그런 말을 말아달라. 꿈을 꾸는 자에게도 고통을 고통스러워할 자유를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