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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요 Apr 24. 2024

달콤쌉싸름, 퇴사의 꿈

언제쯤 할수있으려나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직장인이라면, 아마 십중팔구 퇴사의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가능하면 정년에서 가장 먼 시기에, 가능하면 가장 여유로운 모습으로... 그 여유로운 모습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저마다 다를 테지만, 거기에는 이 딱딱한 네모 건물 속 작은 파티션 안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 것이라는 것도 예상할 수 있다.


나? 나는... 이런 꿈이 있다. 내가 손수 고른 소품들(주로 문구류나 홈데코용 작은 사물들), 작은 식물들, 책과 맥주 같은 나의 취향이 듬뿍 담긴 물건을 파는 가게를 운영하는 것. 손님이 오면 가게를 찬찬히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물건을 하나둘 홀린 듯이 고르게 되는 그런 가게 말이다. 내가 직접 만든 도자기 소품들을 팔아도 좋겠다. 되도록 자연을 닮은 느낌이어야 한다. 가게는 목재로 꾸미고,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날씨와 잘 어울리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단골손님들에게 가끔 차를 내려주고, 동네 주민들과 공유할 수 있는 소소한 소식들도 나눈다. 굳이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심심한데 깊은 맛이 나고, 하지만 정성과 노하우가 꽤 필요해서 쉽사리 도전하지 못하는 맑은 곰탕 한 그릇 같은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다.      


이런 가게가 돈이 될 리 만무하다. 우선은 이 대중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나와 취향이 일맥상통해야 한다는 점에서 많은 예비 손님들과는 멀어진다. 또 그 얼마 남지 않은 손님들 중에서 이 가게를 발견해 주는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 물론 대 SNS 시대에 나 여기 있다는 존재감을 어필할 방법은 있겠으나, 모래알 사이에서 모래알 찾기 같은 기적을 바라야 하는 일과 비슷할 정도로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저 일에 불과하고, 먹고살 돈을 벌어들이는 것과는 또 별개라는 얘기다. 아휴, 배부른 소리.     


퇴사 후에 뭘 하게 되든, 사실 가장 어려운 일은 ‘퇴사’그 자체를 실행하는 것이다. 특히 공무원들에게 퇴사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어떤 강을 넘는 일만큼이나 두렵다. 연차가 쌓일수록 더 그렇다. 만 9년을 채운 30대 초반 공무원인 나의 얘기를 하자면 이렇다. 우선은 이 험악한 경쟁 사회에서 잠깐 몸을 피하려고 공무원 시험을 봤다. 어쩌다 합격을 하게 돼 공무원 집단이라는 우물 안에 발을 들여보니, 벽 안에서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안에도 비가 내리고 물이 차는 법, 그리고 고인 물이 썩기 마련인 법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삶은 이게 아니었는데 하고 돌아보니 아차차, 어느새 나이는 서른이 넘었고, 9년의 세월은 물경력이 된 데다가, 바깥의 세상은 너무나도 혹독해 보인다.     


생각해 보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한평 남짓 파티션 안에서 사무적인 일을 처리하는 것. 종이 보고서와 싸우고, 상사들을 설득시키고,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자기 위로에 비겁한 변명이라고? 맞을 수도 있다. 어쨌든 지금은 내가 회사 밖에서 뭘 잘할 수 있는지, 어떻게 다른 방법으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다. 아, 이렇게 또 퇴사를 미뤘다. 다음 결심은 아마 내일 아침이 될 것 같지만, 실행은 로또 1등이나 당첨돼야 가능할 것이다. 퇴사의 꿈은 언제나 달콤하고, 미루기는 쌉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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