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설마 했습니다. 이미 감염과 전파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백신을 두고 백신 패스와 같은 제도를 진짜로 도입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백신접종률 1등 하고 싶은 마음에 운만 띄우는 것이라고 보았죠. 그런데 진짜로 하더군요.
코비드 19 유행이 시작되면서 방역당국에서 해 왔던 발언 대부분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무지해서 그렇다고 안타깝게 생각했었고, 나중에는 알고도 눈속임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백신 패스를 도입하면서 했던 말, 미접종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도입한다는 핑계는 역겹기조차 했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요? 백신 패스를 도입하는 이유는 단 하나, 백신접종률 높인 다음 K방역을 성공으로 포장하기 위한 것 아닌가요?
현재 백신 패스가 적용되는 대표적인 장소는 헬스, 요가, 필라테스와 같이 실내에서 운동을 하는 시설입니다. 코비드 19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분들은 얼씬도 하지 않는,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 주로 찾는 장소들이죠. 실내에서 남녀노소 다들 모여 앉아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차도 마시는데, 운동을 하려면 백신을 맞거나 이틀에 한 번씩 PCR 검사를 해라? 마스크가 백신이라는 헛소리가 한 때 유행이었지만, 젊고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운동이 진짜 백신>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노란 점퍼 입으신 분들에게 알려주지 않은 듯합니다.
인도 사람들은 유난히 기네스북 기록 경신에 집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도가 보유하고 있는 기록을 보면 별별 것이 다 있는데 그중에 <입안에 빨대 많이 집어넣기> 기록 보유자가 있습니다. 이 남자는 10초 동안 입안에 459개의 빨대를 집어넣기 위하여 평생 동안 사용할 이빨을 몽땅 뽑아냈다고 하더군요. 이쯤 되면 가히 병적인 집착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만, 자신이 원해서 한 일이니 누가 말리겠습니까?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 의미 없는 기록 경신에 집착한다면 이건 이야기가 다릅니다. 더구나 국민들이 그 기록 경신을 위하여 동원되어야 하고, 그 과정 중에 누군가가 크고 작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면 더더욱 이야기가 다릅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렇게나 염원했던 전 국민 70% 백신접종률을 세계 최고 수준의 속도로 일찌감치 달성하고 이제 80%, 90%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정부에서는 K방역의 마무리격으로 OEDC국가에서 금, 은, 동메달 중 하나를 목표로 하고 있는 듯합니다. 정부에게 백신 패스는 일종의 꽃놀이패일 것 같습니다. 백신 패스로 그동안 백신을 거부해왔던 사람들이 대거 백신 접종을 하게 된다면 높은 백신접종률로 K방역을 성공으로 포장하기에 좋고, 만약 백신 접종률이 그리 높아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회를 열면서 닥치는 문제들을 백신 미접종자들의 책임으로 전가할 수 있으니 좋고.. 백신 접종자와 미접종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이야 어쩌면 원했을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현시점 그리고 우리나라의 백신 패스는 정당화될 수 없는 비윤리적인 정책 결정으로 생각합니다. 백신이 전파를 막을 수 있다 하더라도 긴급 승인으로 사용 중인 백신을 국가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비윤리적입니다만, 현재 코비드 19 백신은 감염과 전파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알려져 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장기 안전성에 대하여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정부에서는 백신 패스를 도입한 나름 잘 사는 몇몇 국가 이름을 나열하면서 백신 패스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만, 더 이상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는 일은 그만 두기 바랍니다. 우리나라가 속한 동아시아권은 처음부터 코비드 19에 대한 저항력이 매우 높았던 지역입니다. 이런 지역에서 무증상자도 허락하지 않았던 어리석은 방역정책으로 2년을 허송세월 하고, 이제 와서 미접종자를 제물 삼아 자신들의 잘못을 덮으려고 도입한 제도가 백신 패스라고 봅니다.
코비드 19 백신이 중증도와 사망 위험을 낮춰준다면 스스로 보호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에 의하여 맞으면 될 일입니다. 부스터 샷도 좋고, 매년 아니 매달 맞아도 괜찮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국가가 할 일은 그런 사람들이 맞고 싶을 때 언제라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치명률 0에 수렴하는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다고 삶이 불편해지도록 만드는 것은 국가가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위드 코로나로 가는 길이 멀고 험할 것이라는 것은 정부에서 위드 코로나용 각종 위원회를 거하게 구성하는 것을 보면서 예감했습니다. 원래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모아 놓으면 뭔가 새로운 일을 벌여야만 밥값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그러나 코비드 19 사태에서는 그동안 했던 일 중 의미 없는 일들을 중지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그 빌어먹을 역학조사와 무증상자에 대한 PCR 검사만 중지해도 사회가 절반쯤은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봅니다만,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는 듯합니다. 백신 패스 제도와 함께 하는 역학조사는 미접종자들을 사회적 희생양 만들기에 꽤나 편리한 방법이 될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