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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Aug 23. 2023

코로나 사태와 과학의 몰락

최근 경악할 만한 논문 한편이 JAMA Open Network에 실렸더군요. JAMA Open Network는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즉 미국 의사협회가 공식 발행하는 저널 중 하나로 현재 Impact factor는 13점 정도 됩니다. 저널 숫자가 많은 의학 분야에서도 Impact factor 10점대 저널에 논문을 싣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죠.


논문 제목은 “Communication of COVID-19 misinformation on social Media by Physicians in the US”로, 코로나 사태동안 52명의 미국 의사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misinformation을 분석한 논문입니다. 저자 소속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학교로, 제가 코로나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드는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고 판단하는 분야 전공자군요.  이 논문을 읽으면서 이런 정도의 분석이  JAMA급 저널에 실린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논문에서 사용된 misinformation 정의였습니다.  


논문 저자들은 “당시 미국 CDC 가이드라인과 다른 주장들”을 모두 misinformation으로 정의 내리고 있었습니다. 백신 효능과 안전성, 마스크 효과 등에 대하여 스스로 판단할 의사도 능력도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이 저자들이 misinformation으로 분류한 주장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자연감염이 제공하는 면역이 백신이 제공하는 면역보다 우월하거나 유사하다>, <백신으로 코로나19 전파를 막을 수 없다>, <마스크 의무화 정책은 바이러스 전파를 막을 수 없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중국 우한 실험실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이 있다> 등등..


위 주장들은 “가장 단기간에 거짓과 진실이 뒤바뀐 코비드 19 사태”에 적었듯 지금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명백한 진실이거나, 최소한 미국 CDC 주장보다 훨씬 더 진실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2023년 8월, 이런 논문이 Impact factor 10점대 저널에 버젓이 실리는 현실.. 이것이 바로 현시대 과학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는 다수가 가진 견해가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보여 주었고, 종국에는 인간만이 가진 이성의 힘으로 진실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영원히 다수가 진실이 되는 세상>인 듯합니다. 이 논문의 결론이 의사들이 전파하는 misinformation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논문을 읽으면서 저를 두렵게 한 것은 이 저자들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저런 논문을 쓴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확신범인 듯했습니다. 진정으로 미국 CDC 가이드라인은 진리인 동시에 의료인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으로 믿고 있었으며, 이를 어긴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행위로 보고 있었습니다. 과연 이 21세기가 성경과 다른 주장을 하면 화형에 처해졌던 중세 암흑기와 무엇이 달라졌나요? 화형보다는 의사면허 박탈이 그나마 문명화된 형벌인가요?



조금 아는 건 무지보다 더 위험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니 "더닝 크루거 효과"로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기도 하죠. 저는 각 국가 방역당국에서 만든 수많은 코로나19 관련 가이드라인들은 <조금 아는 사람들이 다수가 모이면> 얼마나 쉽게 어리석고 위험한 판단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연구 논문의 문제점과 한계, 그리고 유기체와 생태계의 복잡성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로 만들어진 국민 건강과 관련된 가이드라인과 정책들은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합니다. 코로나사태는 그 사실을 현실에서 증명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동안 전 세계적으로 공공보건의료조직의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져버렸습니다. 거대 조직으로 탄생한 한국의 질병청은 말할 것도 없고요. 예전부터 이런 조직의 존재 가치에 대하여 깊은 회의를 가지고 있었던 저 같은 사람들은 더 이상 생존이 불가능한 시대가 앞으로 펼쳐질 것 같습니다.


정말 빌어먹을 세상이 되어버린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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