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의 비극성은 평소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었던, 그리고 선의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에 궁극적으로 더 큰 피해를 야기하는 행위를 앞장서서 하도록 만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지식인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들의 공통점은 소위 그 분야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견해를 무한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시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쉽게 지식인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지식인을 통제하면 대중을 통제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로 쉽습니다.
모든 학문 분야가 파편화될 대로 파편화된 현시대는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닌 주제에 대하여 어떤 의견을 가지는 것조차 금기시되곤 합니다. 예를 들면 예방의학자이면서 역학자인 제가 감염병에 대하여 발언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발표했던 논문 목록들을 보니 감염병이 아닌 만성병이 연구주제였다는 이유입니다. 저 같은 사람도 그런 취급을 받는데, 하물며 철학, 심리학, 물리학과 같이 완전히 다른 전공분야의 지식인들이 어떻게 감히 코로나 사태에 대하여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며칠 전 제 책을 읽고 일부러 전화까지 주셨던 학계의 한 분이 메일을 보내오셨더군요. 메일에는 최근 영국의 왕립학회 (Royal Society)에서 발간한 각종 방역정책의 효과를 평가한 보고서가 링크되어 있었습니다. 보고서의 결론은 “거리두기, 마스크, 동선추적과 같은 방역정책들이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데 명백하게 (unequivocally) 도움이 되었다”는 것으로, 일견보기에 제 책의 주장과는 정반대 결론이었죠. 체 책을 읽으면서 잠깐 생각을 바꾸셨다가 아마 이 보고서를 읽으면서 다시 원 위치로 돌아오신 듯했습니다.
영국의 왕립학회는 과학혁명이 태동하던 17세기 창립된 단체로 자연과학계에서 가장 명망 있는 학술 단체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무려 50여 명의 연구자들은 방역정책의 단기효과와 장기효과는 명백하게 다르며 이를 구분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단기적으로 효과적인 것처럼 보이는 방역정책들이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그 효과는 사라지고 반대로 사회에 심각한 2차 피해만 초래한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 없이는 어떤 방역정책에 대한 논의도 탁상공론에 불과합니다.
놀랍게도 이 보고서는 방역정책으로 인하여 발생가능한 2차 피해에 대한 연구는 다른 연구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었으며 오로지 방역 정책이 바이러스 전파를 막을 수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었다고 기술하고 있더군요. 이는 신약 개발 시 부작용은 평가하지 않고 효능만 평가하겠다는 주장보다 더 어이없는 주장입니다. 국가의 모든 정책은 위험-이득 분석에 기초하여 위험보다 이득이 명백하게 큰 경우에만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 중 상식으로, 어떻게 국가 정책을 두고 이런 보고서가 가능할 수 있었는지 참으로 불가사의합니다. 현시대 전문가들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례임을 다시 한번 강조할 뿐입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결론을 뒷받침하는 사례들로 3국가를 들고 있었는데, 바로 한국, 홍콩, 그리고 뉴질랜드입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자신들의 내러티브와 맞지 않는 현실에서의 증거는 채택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스웨덴은 그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대표적인 국가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스웨덴에 대하여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들의 내러티브에 맞는 사례만을 cherry-picking함으로서 다시 한번 세상을 기만하고 있군요.
<조지오웰의 1984>를 보면 빅브라더 국가의 주요 통치 기술 중 하나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증거를 부인하고 국가에서 알리는 정보만을 진실이라고 믿도록 국민을 세뇌시키는 것>입니다. 코로나19 사태는 이미 대중들이 직접 경험하고 눈으로 확인했던 수많은 증거들이 존재합니다. 마스크가 그렇게 효과적이라면 마스크 착용률 100%에 육박했던 한국에서 하루 60만 명 확진자가 나오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 방역정책이 그렇게나 중요했다면 노마스크, 노락다운의 스웨덴 초과사망이 유럽권 최하위일 수가 없습니다. 동선 추적해서 선제검사, 선제격리하는 한국의 방역정책이 그렇게나 훌륭했으면 무증상, 경한 증상자에게 PCR검사를 하지 않았던 일본의 초과사망이 한국보다 낮아서는 안 됩니다.
이런 수많은 현실에서의 증거들이 그들의 주장이 허구임을 알려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은 그 방역정책들이 도움이 되었음을 제발 믿어달라고 강요하고 있군요.
해외에서도 당연히 이 보고서에 대한 비판이 있을 것 같아서 검색해 보니 제목부터 살벌하군요. 이 보고서를 당당히 유사과학이라고 명명한 David Lovermore교수의 “The Royal Society’s lockdown pseudoscience”, 그냥 오류가 아니라 심각한 오류투성이 보고서라고 본 Kevin Bardosh 교수의 “The Royal Society’s lockdown report is deeply flawed” 등등.. 지금쯤은 코로나사태와 K방역의 문제점을 인지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르는 이 땅의 지식인들이 부디 이 보고서를 읽고 다시 혼란에 빠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