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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Dec 20. 2023

호흡

아홉 번째 이야기 

여덟 번째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제가 직접 경험했던 몸의 변화는 당연히 참장공과 태극권에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시간이 감에 따라 또 다른 중요한 변화 하나를 감지할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호흡이었습니다. 처음 배울 때부터 의식적으로 호흡에 신경 쓸 필요는 없으며 그냥 자연호흡에 몸을 맡기면 된다고 했었기 때문에 참장공과 태극권을 하면서 단 한 번도 호흡에 대하여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몸에서 느껴지는 에너지 흐름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호흡도 느려지고 깊어지면서 저절로 복식호흡에 가까운 호흡을 하고 있더군요. 


아니 어쩌면 복식호흡이라기보다는 골반호흡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릅니다. 코를 통하여 들어간 공기가 폐가 아니라 바로 복부를 거쳐 골반까지 쭉 내려가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리고 호흡할 때마다 복부뿐만 아니라 골반 내에 자리 잡은 여러 장기들이 수축과 이완을 동시에 하는 듯했습니다. 


복식호흡이든 골반호흡이든 아니면 단전호흡이든 무엇이라 부르던지 관계는 없습니다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해부학적 구조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제3의 호흡 경로가 존재하는 듯 느껴졌습니다. 2021년 매우 흥미롭게도 마우스와 돼지를 이용한 동물실험에서 포유류가 통상적인 호흡기관인 코, 입, 폐가 아닌 장으로도 호흡을 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는데요, 과연 인간이라고 불가능할까요? 


어떤 경우에는 잠시 호흡이 중지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호흡이 느려지기도 하더군요. 그렇지만 인위적으로 숨을 멈출 때와 같은 답답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편안한 상태에서 호흡을 멈춘 듯한 나를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다시 자연스럽게 호흡이 시작되곤 했죠. 훗날 부처님께서 불교명상 수행법을 설명한 대념처경에 "호흡이 길면 긴대로 알아차리고 짧으면 짧은 대로 알아차린다"라는 말씀을 남긴 것을 알게 되는데, 그 구절을 읽자마자 제가 경험했던 일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흡의 변화는 참장공시 특히 뚜렷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참장공을 할 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줄 알았더니만, 문득 이런 호흡 습관이 평소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날 잡아서 타이머로 측정을 해보니 일상에서는 분당 호흡 횟수가 약 6~7회 정도로 줄어든 듯했고, 참장공에 집중할 때는 분당 호흡 횟수가 2~3회 정도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현재 건강한 성인의 경우 분당 호흡 횟수가 약 12~18회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잠을 잘 때 베개를 사용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냥 뒷머리, 뒷목, 견갑골 부위를 편편한 바닥에 대고 똑바로 누워있으면 코로 들어간 공기가 아무런 저항 없이 복부와 골반까지 밀고 들어가는 느낌이 들지만, 베개를 사용하면 아무리 좋은 베개라 하더라도 그런 느낌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자체가 저한테는 매우 편안한 휴식상태라서 낮에도 가끔 그런 자세로 누워있곤 했는데요, 갑자기 인간은 언제부터 베개를 사용하기 시작했을까..라는 의문이 들더군요. 베개를 사용하는 유일한 동물인 인간.. 우리가 현재 바른 수면자세라고 알고 있는 것이 정말 바른 수면자세일까..


하루는 그렇게 누워있다가 배 쪽의 피부가 거의 등에 닿을 정도로 호흡이 평소보다 훨씬 더 강력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제 신체로 가능한 최대치의 횡격막 움직임을 동반했을 것으로 보이는 그 호흡을 처음에는 그냥 바라만 보았는데 어느 순간 일반적인 복식호흡과는 정반대로 복부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즉, 숨을 들이마실 때 복부가 등 쪽으로 밀착되면서 골반 안에 자리 잡은 여러 장기들이 위로 당겨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숨을 내쉴 때는 모든 것이 이완되면서 복부가 불룩하게 앞으로 나오고 있는 겁니다. 몇 번 강력하고도 이상한 호흡을 경험하고 난 뒤 이런 호흡도 세상에 있는가 싶어 검색을 해보니 <역복식 호흡>이란 것이 있긴 하더군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간의 균형과 조화로 작동하는 자율신경계는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기능들을 민감하게 조절하고 있습니다. 자율신경계가 관여하는 신체 기능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작동합니다만 호흡만은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죠. 수많은 스트레스 유발요인들로 인하여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활성화된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부교감 우위를 만들어줄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터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중 호흡은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으면서 누구나 손쉽게 익힐 수 있는 기술로, 우리는 횡격막의 움직임을 동반하는 깊고 느린 호흡으로 대표적인 부교감신경인 미주신경을 활성화시킬 수 있죠. 


일상 속에서 호흡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책을 통해 활자로만 익혔던 이런 지식들이 제 삶 깊숙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농담이 아닌 진짜 운동으로서 <숨쉬기 운동>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호흡의 중요성을 체득한 것은 제가 이 나이에 이르도록 배운 그 어떤 지식보다 값진, 진정 의미 있는 삶의 기술이었습니다. 


열번째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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