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올린 "고령화 시대에 필요한 것은 의사가 아닌 00입니다"라는 글에서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정치학교수가 2023년 말 SBS와 가졌던 의대증원 관련 인터뷰를 링크해 드린 바 있습니다. 한국의 그 어떤 보건 정책 전문가들보다 더 설득력 있게 자신의 논지를 펴는 이 인터뷰를 보면서 장부승교수 vs.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교수 혹은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정형선교수와 1:1 공개 맞토론을 한번 시켜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까지 들더군요.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외무부에 오래 근무하기도 했던 장부승교수는 개인적으로 일면식도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2021년 12월에 나온 <K방역은 없다>라는 책을 통해 그런 분이 계신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죠. 다수의 저자들이 각자 맡은 주제의 글을 써서 모은 그 책에는 국가별 방역 정책을 소개하는 장이 있는데 장부승 교수는 일본, 저는 스웨덴에 대한 글을 썼었습니다.
일본과 스웨덴 모두 코로나 사태 내내 <K방역이 세계 최고>라고 세뇌된 한국인들로부터 엄청난 비난과 조롱을 받던 국가였다는 공통점이 있죠. 유행초기부터 이 국가들의 느슨한 정책이 교과서적인 팬데믹 대응방식이고 K방역은 곧 독이 든 성배가 될 어리석은 정책이라고 주장했던 저는 공공연히 토착왜구라고 불릴 만큼 세간의 비난에 시달리고 있었고요. 시간이 갈수록 제 판단이 옳았다는 확신은 더해갔지만, 그런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은 이곳 브런치밖에는 없었습니다. 학계에서조차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그 당시 사회 분위기에 참으로 좌절감이 컸죠.
그렇게 근 2년을 혼자 고군분투하다가 2021년 말이 되어서야 공동저자로 참여한 장부승 교수가 쓴 글을 읽게 됩니다. 당시 장부승 교수의 글 제목은 <K방역 vs. J방역, 누가 잘했나?>로 한국의 반일감정을 고려한다면 매우 도발적으로 보일만한 제목이었습니다. 그러나 치밀하게 각종 데이터를 인용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방역정책을 비교한 그 글은 제가 그동안 가졌던 관점과 거의 일치하는 것이라서 아주 반가웠죠. 보건의료와 아무 관계없는 정치외교학 전공자도 직접 관련 통계를 찾아보고 편견 없이 사고하면 충분히 도출가능한 결론이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한국의 전문가들이 가진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례라는 생각을 했었고요.
사실 코로나 사태는 비전문가들의 통찰이 빛났던 시대였습니다. 특히 해외에서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종사했던 분들이 언론을 통하여 보도되는 내용에 의문을 가지고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방역당국이나 주류 전문가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글들을 적어서 공유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중에는 허술한 주장을 담은 글들도 있었지만, 제가 보기에도 감탄할 만큼 수준 있는 글들도 많았습니다. 논문이 없으면 어떤 합리적인 추론도 불가능했던 혹은 논문만 맹신하는 소위 전문가들보다 질문하고 생각하는 힘을 가진 비전문가들이 백번 더 낫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장부승교수가 최근 의대증원 사태와 관련하여 메디게이트 뉴스라는 의료전문 언론사와 긴 인터뷰를 했더군요. 4개월 전의 SBS 인터뷰와 큰 줄기는 동일합니다만 글로 보시기 원하는 분들을 위하여 링크를 겁니다.
수많은 정보들이 널려있는 현 시대에는 더 이상 무엇을 전공했는가? 어떤 일을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은 듯싶습니다. (1) 어떤 현상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직접 정보를 찾아보고자 하는 열정이 있는가? (2) 그 정보에 기반하여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가 핵심으로 이 두 조건을 충족시킨 비전문가들이 그렇지 않은 전문가들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결론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확인하고 있군요. 특히 이미 언론 보도를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시대가 된 현실에서 살아남는 길은 각자가 이성의 힘을 부지런히 갈고닦는 것밖에는 답이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