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일본에서 현재 WHO가 주도하고 있는 팬데믹 조약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군요. 서구권에서는 한참 전부터 정치권을 통해서 팬데믹 조약의 위험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적으로 되고 있었으나 동아시아권에서 목소리가 나온 것은 일본이 처음인 듯싶습니다. 팬데믹 조약이란 한마디로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일들을 훨씬 더 조직적으로 벌이기 위한 국제 공조 시스템 구축입니다.
2020년 동아시아권의 일본은 서구권의 스웨덴과 함께 코로나19는 인류가 그렇게 대응할 필요가 없는 감염병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매우 중요한 국가였습니다. 무증상, 경한 증상에 대한 PCR검사를 제한하는 방법으로 바이러스 지역사회 전파를 허용했던 세계 최고령국 일본은 동아시아권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높은 저항력과 함께 중국의 봉쇄령이나 한국의 동선추적 따위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죠.
2020년 그렇게 수많은 비난을 들어가면서도 대조군으로 역할을 충실히 해준 이 두 국가가 없었더라면 아마 코로나19 사태는 더욱 비극적으로 마무리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WHO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권고했던 방역정책을 따르지 않았던 이 두 국가의 존재가 매우 불편했을 것은 불문가지고요. 그런데 WHO의 팬데믹 조약이 통과되면 더 이상 스웨덴, 일본과 같은 사례는 존재할 수 없을 겁니다. 조약 체결에 참여한 모든 국가는 WHO가 결정한 방침대로 따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거죠.
물론 일본과 스웨덴의 대응에서도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처음부터 건강한 사람들의 자연감염을 허용했던 일본과 스웨덴은 코로나19 백신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열심히 국민들에게 백신접종을 권유할 필요가 없었던 국가였습니다. 일본의 경우 기시다 총리내각이 들어선 이후로 이미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되기 시작한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데 특히 집착했는데, 이는 어느 국가든 방역정책 결정에 정치권의 영향력이 지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봅니다.
아직도 코로나19 사태의 실상과 WHO 팬데믹 조약이 가진 의미에 대하여 국민 대다수가 무지의 늪에 빠져있는 한국에서 과연 일본과 같은 대중의 각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시위는 고사하고 WHO 팬데믹 조약 덕분에 앞으로 한국은 더욱 안전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망상을 가진 대중들의 돌팔매질에 다른 의견을 입밖에 내는 것조차 불가능할 겁니다. 그 망상을 주도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한국 질병청이고요.
지난 3월 WHO에서는 미래 호흡기감염병 팬데믹 대비를 위한 <코로나19 대응 교훈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한국이 모범사례 중 하나로 소개되었다고 하는군요. 가장 어리석고 반인권적 대응을 한 국가가 모범 사례로 간주될 정도로 현 시대 공공보건 의료조직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질병청에서는 이 내용을 신속하게 보도자료로 배포하고 몇몇 언론에서 이를 기사화했는데, 아래는 기사에 인용된 현 질병청장의 말씀입니다.
“WHO가 모범사례로 우리나라를 평가한 것을 바탕으로 방역 역량을 더욱 향상시켜 미래 팬데믹 위협에 철저히 대비하겠다” “작년 한국에 개소한 글로벌보건안보 조정사무소와 올해 지정 예정인 팬데믹 대비 대응 세계보건기구 협력센터를 통해 보건안보 국제협력 분야에서도 선도적 역할을 해나가겠다”
아무래도 방역 1등국 한국은 지금까지 그랬듯 미래에도 WHO가 가장 아끼는 국가가 될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