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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Oct 03. 2019

환경호르몬 피하며 살기의 덧없음 2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환경호르몬 숫자는 대략 열 손가락 전후입니다. 언론에서 열심히 다뤄준 종류들이죠. 하지만 환경호르몬으로 공식적으로 분류되는 화학물질은 백 여종이 넘고 추정되는 종류는 수천 종이 넘습니다. 거의 매년 새로운 종류들이 몇 백종씩 더해지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이 숫자조차도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환경호르몬 여부를 검사하는 화학물질 종류가 제한적이고 인체의 광범위한 호르몬 시스템 중 일부만을 대상으로 검사하고 있기 때문이죠. 


현재 우리는 누구나 수백 가지 아니 수천 가지 환경호르몬에 일상적으로 노출이 되면서 살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모든 플라스틱 제품 (내 눈에 보이는) 폐기 처분하고, 샴푸, 린스 포함 계면활성제 들어간 제품은 당연히 아웃이고, 유기농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하더라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안전하다고 말할 수조차 없습니다. 아래서 설명드리겠지만 환경호르몬들이 가진 특성들 때문입니다. 


물론 개인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고 그러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그러한 삶의 가치가 이 사회에 들불처럼 퍼져가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당장 우리의 건강과 연관 지어서,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고 대중들을 교육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것입니다. 특히 전문가들이 던지는 이런 조언들은 해롭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에서 그래도 해볼 수 있는 정작 의미 있는 일들로부터 관심을 멀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환경호르몬의 문제는 단순히 숫자가 많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호르몬의 진짜 문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환경호르몬에 대한 연구는 99.99% 개별 화학물질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름을 붙이죠. 이것은 여성호르몬과 비슷한 것, 저것은 남성호르몬과 비슷한 것, 어쩌고, 저쩌고.. 그 명단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자고 일어나면 매일 수십 개씩 새로운 논문들이 발표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런 실험실 연구와는 달리 사람들은 수백 가지, 수천 가지 환경호르몬 혼합체에 동시에 노출되면서 사는 존재입니다. 그 안에는 비스페놀 A와 같이 여성 호르몬과 비슷한 놈들도 있고, 그 역할을 방해하는 놈들도 있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남성 호르몬과 비슷한 놈, 방해하는 놈, 갑상선 호르몬과 비슷한 놈, 방해하는 놈..  이런 놈, 저런 놈.. 우리는 이 모든 종류들의 혼합체에 끊임없이 노출되면서 살고 있는 겁니다. 그 최종 결론이 어떻게 될는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환경호르몬의 특징 중 비선형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하여 발생하는 문제는 우리가 상식처럼 생각하듯 농도가 높을수록 더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농도가 적절히 낮을 경우 문제가 나타날 위험이 더 높아집니다. 남들보다 적게 노출된다고 해서 상대적으로 더 안전할 것이라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 세계입니다. 


이러한 복잡성의 결과가 예측 불가능성으로 나타납니다. 모두 다 노출되면서 살고 있으나 모두가 환자가 아닌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국내외를 막론하고 현재 연구자들이 이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은 매우 지엽적입니다. 문제의 실체에 대한 이해가 아닌, 논문이 되느냐 아니냐가 연구자들에게는 우선순위가 훨씬 더 높기 때문입니다. 우습게도 이 분야 연구는 파편같이 쪼개면 쪼갤수록 더 논문 쓰기가 좋아집니다. 당연히 문제의 실체로부터는 빛의 속도로 멀어져 가지만요..


그런데 여기까지 읽고 환경호르몬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이야기로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분명히 환경호르몬들의 기괴한 조합으로 인하여 최종적으로 이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사회 전체적으로는 환경호르몬으로 인한 질병들이 증가합니다. 그러나 개인차원에서 누가 그런 위험에 처해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즉, 현재 환경호르몬이라고 알려진 몇몇 화학물질들을 측정해서 그 수치가 남들보다 더 높다고 해서 이 사람에게 더 문제가 있을 것이다. 혹은 저 사람에게 더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미 환자가 된 사람들은 본인의 질병 발생에 이 놈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기여를 했다고 봐야 합니다.  


합성화학물질들이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하여 벌어지는 문제들은 현재의 패러다임으로는 답이 없습니다. 하루빨리 이를 인정해야만 다른 대안을 모색해볼 수 있을 텐데 요즘 벌어지는 일을 보고 있자니 나날이 점입가경입니다. 현 패러다임의 우산을 더 넓고 더 견고하게 펼친 다음, 각종 오믹스, 온갖 통계 모델링,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을 모조리 동원해서 환경호르몬이 인간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한다는 초대형과제들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이거든요. 현대사회에서 학계는 가장 성공한 사기 시스템일 뿐이라던 그 누군가의 일갈이 실감 나는 현장이라고 봅니다. 


첨단 과학이 아니라서 후지고 시시해 보이겠지만 환경호르몬에 대한 대처방법은 내 몸 안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놈들이 세포 수준에서 일으키는 문제를 가능한 한 빨리 내 몸이 찾아서 교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미 내 몸 안에 가득한 환경호르몬 혼합체에 대하여 대처하는 방법.. 미토콘드리아를 일깨우는 방법.. 운동, 파이토케미컬, 간헐적 단식, 저탄수화물식, 적절한 지방, 식이섬유, 명상.. 이 모든 것은 건강한 사람보다 환자가 된 사람들에게 더욱 중요합니다. 제가 주야장천 방 안의 보이지 않는 코끼리의 몸통과 호메시스를 이야기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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