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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Sep 26. 2019

환경호르몬 피하며 살기의 덧없음 1

비스페놀-A(Bisphenol-A, BPA)라고 부르는 합성화학물질이 있습니다. 환경호르몬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물질이죠. 환경에 존재하는 화학물질로 인체 호르몬 시스템에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영향을 줄 수 있으면 다 환경호르몬이라고 부릅니다. 전문가들은 내분비교란물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고요.  


한때 비스페놀-A는 아기 젖병을 만드는 소재로 널리 이용되었으며 식품용기 소재로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투명하고 가벼우면서도 단단해서 부엌에서 사용하기에는 최적의 소재거든요. 그 외에도 현대사회에서 사용처는 무궁무진입니다. 잘 알려진 비스페놀-A가 사용된 물건들로 영수증, 통조림 등이 있지만 이것은 일례일 뿐이고 워낙 사용처가 광범위하여 플라스틱 용기, 영수증, 통조림 단 하나도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경로를 통하여 얼마든지 노출될 수 있습니다. 



비스페놀-A 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비슷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해로울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지는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 유명해진 것은 공중파 방송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고 나서입니다. 대중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되는 방송을 만들기를 원하는 제작자들은 잘 짜인 시나리오를 이용하여 이 환경호르몬이라는 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비스페놀-A연구자들이 나와서 각종 연구결과들을 보여주면서 이 놈이 얼마나 인체에 해로울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현대인들이 이 비스페놀-A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노출되고 있는지도 보여줍니다. 방송이 끝나고 나면 각종 인터넷 사이트, 특히 주부 사이트에서는 난리가 나죠. 


비스페놀-A가 해롭다고 하니 당연한 수순으로 연구자들은 비스페놀-A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신물질에는 A 대신 다른 알파벳을 사용하여 비스페놀-S, 비스페놀-F, 비스페놀-AF 뭐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입니다. 이런 대체물질들이 만들어지면 비즈니스를 하는 입장에서는 더할 수 없는 좋은 기회입니다. 이 대체물질을 이용하여 새로운 상품을 만든 후 BPA-free라고 광고를 할 수 있거든요. 


공중파 방송을 통하여 환경호르몬에 대하여 공포감을 가지게 된 수많은 소비자에게 이런 광고는 바로 먹힙니다. 사람들은 “안전한” 제품을 신속하게 만들어준 회사에 감사하면서 기존에 사용하고 있던 비스페놀-A 가 포함된 생활 용품들을 폐기 처분하고 모두 BPA-free 제품으로 바꿉니다. 당연히 후자는 전자보다 가격도 비쌉니다만 "안전한" 신제품이니 더 비싼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스페놀-A를 넣지 않고도 여전히 투명하고 가벼우면서도 단단하지만, 다른 알파벳이 붙은 물질이 대신 들어간 것에 대하여서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비스페놀-A만 아니면 만사오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심상챦은 연구결과들이 발표됩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정신 차리고 연구해보니 대체물질들도 비스페놀-A와 별반 차이가 없는 환경호르몬이라는 겁니다. 심지어는 더 해로운 것 같다는 연구결과들도 발표됩니다. 이러한 사실이 학계에 보고된 지도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소비자들의 뇌리 속에는 비스페놀-A만 각인된 상태이고 BPA-free 제품으로 한몫 챙긴 사람들은 이미 다 챙긴 후입니다. 항간에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에 받혀 죽는다는 저렴한 속담이 있죠.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처한 상황을 묘사하는데 이 보다 더 적절한 비유는 없을 겁니다. 


어디 비스페놀-A 뿐이겠습니까? 역시 환경호르몬으로 명성이 자자한 프탈레이트를 포함하여 지금 이 시간에도 여기서는 이런 환경호르몬이 검출되고 저기서는 저런 환경호르몬이 검출된다는 뉴스들이 쉬지 않고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발맞추어 환경호르몬 걱정 없는 제품임을 강조하는 온갖 상품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죠. 관련 연구비도 기하급수학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덩달아 연구자들 숫자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발표되는 논문 숫자는 상상초월입니다. 바야흐로 수많은 사람들이 환경호르몬으로 먹고 사는 환경호르몬 전성시대가 된 겁니다. 


그런데  환경호르몬이라는 물질은 정말 우리들에게 얼마나 해로운 것일까요? 실험실 연구에서 보였던 그 심각한 문제점들이 인간들에게도 고스란히 다 나타나는 걸까요? 거기에 더하여 세상에 유명한 몇몇 환경호르몬을 피하면서 살고자 노력하는 삶은 또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는 걸까요?  저는 몇몇 환경단체에서 외치는 “환경호르몬 없는 세상을 만들자”라는 구호를 보고 있자면 도대체 누가 그러한 세상이 가능하다고 조언했을까 자못 궁금해집니다. 


To be continued (두번째 글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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