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충제 항암효과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충격이 만만찮습니다. 혹자는 일회성 에피소드로 폄하하고 보건당국에서는 사용 중지를 권고하고 있지만 사태가 그렇게 진행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미 현대사회는 변곡점에 접어들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펜벤다졸에 관심이 커서 관련 논문들을 몇 편 읽어보았습니다. 논문을 읽기 전 제가 들었던 펜벤다졸의 작용기전은 탁솔과 비슷하게 암세포의 microtubule 형성을 억제한다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논문을 보면서 제가 가장 주목한 기전은 펜벤다졸이 세포의 포도당 이용을 강력하게 억제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소위 4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대사 항암제의 기전 중 하나죠.
그런데 환자들의 경험담 중에는 펜벤다졸이 혈당 조절이나 다른 병에도 도움이 되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응은 냉소적입니다. 만병통치약이라면 그 자체로 사이비스럽고 특히 펜벤다졸이 세포의 포도당 이용을 억제한다면 혈당을 증가시켜야지 감소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결과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일차원적인 관점이라고 봅니다. 펜벤다졸이 인체 내에서 세포의 포도당 이용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면.. "적절한" 용량에서 암세포는 죽이면서, 동시에 혈당도 조절하고 다른 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포의 포도당 이용 억제는 미토콘드리아에서 시작되는 스트레스 반응, 즉 미토콘드리아의 호메시스(mitohormesis)를 유도하는 핵심 신호로 작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Mitohormesis가 제대로 활성화되면 생명체는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유지와 보수 기능을 최적화하는 쪽으로 방향 전환을 하게 됩니다.
세포의 포도당 이용이 억제될 경우 주로 해당 과정 (glycolysis)을 통하여 에너지를 얻는 암세포들은 (그렇지 않은 암세포들도 많다고 합니다)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게 될 겁니다. 그러나 미토콘드리아가 정상적으로 기능을 하는 건강한 세포의 경우에는 포도당이 들어오지 않으면 지방산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데 이때 mitohormesis를 활성화시키는 신호를 발생시킵니다. 따라서 세포의 포도당 이용 억제를 통하여 다른 문제점들이 추가적으로 교정될 수 있습니다.
이 기전은 현재 나름 열풍의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저탄고지와도 밀접한 관련성이 있습니다. 저탄고지의 방점은 "고지"가 아닌 "저탄"에 있는데요, 탄수화물이 외부에서 들어가지 않으면 미토콘드리아가 지방산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면서 역시 mitohormesis가 활성화됩니다. 물론 저탄고지만이 호메시스를 활성화시키는 유일한 식사 방법은 아닙니다. 적절하게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면서 하는 간헐적 단식도 mitohormesis를 활성화시킵니다. 심지어는 저탄고지와는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현미채식도 조금 다른 기전으로 호메시스를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어쨌든 저탄고지와 펜벤다졸의 공통점은 세포가 가능한 한 포도당을 이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차이점은 저탄고지는 외부에서 들어가는 탄수화물을 차단하여 세포가 포도당 대신 지방산을 이용하도록 하는 좀 돌아가는 방법이고, 펜벤다졸은 외부에서 탄수화물이 들어가고 간에서 포도당을 만들어내도 세포 수준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포도당을 거부하는 보다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기전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펜벤다졸이 듣는 환자들의 경우에는 드라마틱한 결과를 보였던 것 같고요.
일단 지금까지 자료들을 살펴본 제 생각을 요약하자면, 앞으로 구충제 항암효과가 가진 의미를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하고 해석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갈 것으로 봅니다. 비선형성을 기본으로 하는 호메시스의 특성상 용량의 최적화가 시급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허만료가 된 구충제로 그 비싼 임상시험을 자발적으로 하는 제약회사는 찾기 힘들 듯 하니, 일 년 R&D 예산이 수십조 원에 이르는 정부에서 발 벗고 나서서 연구를 한 번 주도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