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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Nov 07. 2019

펜벤다졸과 대마오일

현재 구충제로 셀프 임상을 하고 계시는 말기암환자분들이 펜벤다졸과 같이 복용하는 삼종세트 중 CBD오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마초의 원료인 대마류 식물에서 추출한 것이라서 대마오일이라고 불리기도 하죠. 다들 구충제에 너무 집중하고 계셔서 CBD오일은 흡수를 도와주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없는 CBD오일 대신 들기름이나 올리브유를 대신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 하지만 CBD오일은 단순히 흡수를 도와주는 역할 이상을 할 것으로 봅니다. 


현재 미국을 포함하여 많은 국가에서 CBD오일은 건강보조식품으로 구입가능합니다. 시판되는 CBD오일은 중독, 환각을 일으키는 대마 성분의 함량이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약 청정국이라는 이미 빛바랜 닉네임에 깊이 심취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CBD오일조차 대마에서 추출했다는 그 이유만으로 마약으로 분류하고 있죠. 올해부터 특수의료용으로 허가되어 특정 뇌전증환자의 경우 의사 처방 하에 사용은 가능하나 그 절차가 어마 무시하게 까다롭고 복잡하다고 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대마오일에 대한 사회 인식이 개선되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대마오일의 혜택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마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 해외에서는 LSD, 실로시빈, 아야와스카와 같은 그 유명한 환각제들도 환자 치료용으로 이용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들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특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각종 중독에 기존 치료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효과적임을 보여주는 임상시험 연구결과들도 발표된 바 있고요. 따라서 이런 환각제들을 의사의 철저한 감독하에 치료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읽은 한 책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약(麻藥)의 ‘마’ 자가 악마(惡魔)의 ‘마’와 똑같은 줄 안다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막연히 악마, 마귀, 마녀, 마약.. 다 같은 동네 사는 친구들인 줄 안다는 거죠. 하지만 마약의 역사는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입니다. 농업의 시작이 식량을 재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약을 재배하기 위해서이며, 심지어는 환각성분을 가진 식물들이 인류 진화를 이끌었다는 주장까지 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마약류에 속하는 식물들은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 가능했던 거의 유일한 치료약이었습니다.   

  

몇 년전 우리나라 사람들의 죽음의 질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매우 나쁘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었습니다. 죽음의 질이 나쁘다는 것은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입니다. 가장 큰 이유가 우리나라에서는 죽음을 앞두고 고통에 신음하는 환자들에게도 마약성 진통제를 매우 제한적으로만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우습게도.. 마약에 중독될까 봐.. 


현재 우리나라 식약처에서는 반복하여 구충제 자가 임상을 선택한 말기암환자에게 구충제의 부작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약중독이 걱정되어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마약성 진통제를 쓰지 못했던 그 시절과 과연 무엇이 달라졌나요? 자가 임상을 선택한 말기암환자들을 막지 말고 도와줘야 한다는 강윤희 식약처 임상심사위원의 주장에 저도 기꺼이 한 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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