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4. 미풍(微風)

by 이도공


몸이 가장 뜨거워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러닝으로 비유를 하자면 같은 날씨 속에서도 뛸 때 보단 걷거나 멈출 때가 더 많은 열과 땀이 난다. 왜 그때 더 많은 열이 날까? 뛰는 순간에는 피부가 근육으로 집중되면서 열과 땀이 거의 나오지 않지만 걷거나 멈추는 순간에 근육으로 집중되었던 피부가 다시 돌아가면서 열이 나고 땀이 나는데 그때 계속 불어오던 잔잔한 바람에도 그들과 다시 만나면 엄청난 열기와 땀을 더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다. 그러니까 결국에 바람은 그냥 그렇게 보여준다는 거였다.



최근에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한 사람과 이별을 했다. 그래서 사랑이야기보다 상처받았던 이야기만 쓰다 보니 다신 사랑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사랑했을 당시에 써 놨던 그때의 감정을 읽어보려고 메모장을 열었다. 메모장에는 ‘사랑’이라는 폴더와 ‘아무것도 아닌 사이’라는 폴더가 있다. ‘사랑’은 사랑할 때 벅차오르던 나의 마음들을 조금이나마 건져내 줄 폴더고, ‘아무것도 아닌 사이’는 그 사람이 정말 미워지거나 날 열받게 할 때마다 욕 대신 적어놨던 폴더 함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사이라면 내가 여기서 그 사람을 더 깊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이렇게 저장해 놓았다. 그런데 사실 이 폴더의 원래 이름은 '인사'였다. 그 사람이 미워지기 전에 우리는 직접적인 인사를 하지 않아도 이미 사랑했기에 인사였다. 그래서 지금은 그 두 가지 폴더를 모두 넣어둔 큰 폴더의 이름은 ‘인사’가 되었다.


나는 ‘인사’라는 폴더함에 들어가 ‘사랑’을 누르려고 하자, 차마 그 둘에 들어갈 수 없었던 메모 한 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바로 그 메모를 펼쳐보았고, 그 안에는 그때 당시에 만났던 그 사람과의 사랑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이성들을 생각하며 써놨던 글이 언젠간 '아무것도 아닌 사이'에 넣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를 가장 사랑하던 너는

사랑을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더라면,

알 거다.


너를, 그리고

나를.


너를 사랑한 순간에 나를 가장 사랑했었고

나를 가장 싫어했던 순간에도 너를 미워했다.


상대의 비참함은 곧 나의 비참함이라는 걸 깨달았고

안된다는 말은 곧 사랑이라고 돌려 말했다.


아프다 말하면, 곧 괜찮아.라고 돌아올 줄 알았다.

괜찮다 말하면, 곧 아니야.라고 돌아올 줄 알았다.

아니라고 말하면, 곧 사랑해.라고 돌아올 줄 알았다.


끝내 돌아오지 않는 사랑은, 끝인 줄만 알았고

너와의 끝 또한 곧 사랑인 줄만 알았다.


이젠 묻고 싶다.


아직도 아픈지 아님,

아직도 괜찮은지 것도 아니면,

아직도 너는 너를 사랑하는지, 그리고 나를.



결코 그들에게는 직접적으로 도달하지 않을 내용이지만 작은 바람이 부는 어느 날에 그들 중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자신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때의 우린 사랑이 아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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