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무것도 아닌 사이
*
사랑과 다른 사람.
사랑의 시작이 다르듯
사랑의 도착도 달랐다.
해가 뜨면 설레었고
해가 지면 보고 싶었다.
달이 뜨면 애틋했지만
달이 지면 마주했었다.
서로의 감정이 다르듯
서로의 생각도 달랐다.
*
말 한마디로 끝날 수도 있던 일이
말을 안 해서 너와 끝내고 싶다는 걸
알게 되었다.
*
나만 놓으면 끝인 관계에서
당신과 나 사이에 남은 게 미련뿐일 때 뭘 더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봤어.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거더라. 가만히 있는 거.
아이가 부모를 잃어버렸을 때 가장 먼저 해야 되는 거.
가만히 있는 거. 너를 잃어버렸을 때도 나는 계속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럼 좀 나아질까 하고.
그럼 좀 널 다시 되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
놓은 사람은 발이 빠른 게 아니었다네.
놓친 사람의 눈이 허공을 보았을 때도
놓은 사람의 눈은 그를 향했었다네.
놓친 사람의 눈가에 물이 고일 때조차도
놓은 사람의 발등엔 이미 물이 고여있었다네.
놓친 사람의 눈은 여전히 늦었었다네.
*
내가 들었던 무기는
헤어짐이 아니었다.
매 순간 너와 헤어지고 있었던 거였다.
그러니까 그동안에 내가 들었던 무기는
진짜 무기가 아니었다.
*
푸르던 너의 말은
나에게 익숙해져만 갔고
너의 말은 곧 내가 되어 나를 버렸다.
하얀 눈을 보던 너의 눈은
나와 다시 마주 보았음에도
너의 말은 곧 나를 이해시켜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