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한 이가 살아남는 법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힘들어. 컨디션이 별로야. 기운(에너지)이 없어. 나는 왜 항상 힘들고 피곤하고 기운이 없을까. 블랙핑크 제니도 했던 말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서 항상 체력적인 한계를 느낀다고. 나도 그렇다. 컨디션이 좋고 에너지가 충분하다면 분명 재밌게 했을 일들인데 체력부족, 컨디션 저하 이런 이유들로 자꾸만 주저하게 된다. 이 글은 어쩌다 보니 이렇게 태어난 몸과 마음을 짊어지고 어떻게 살아남을 건지에 대한 나의 치열한 고민이다. 그리고 사실 요즘은 꽤 컨디션 조절을 잘하고 있는 것 같아서 미래의 내가 이걸 까먹고 힘들다고 징징댈까 봐 적어둔다.
우선 나의 한계를 아는 게 중요하다. 누군가 물어봐주지 않아도 꾸준히 나에게 질문해야 한다. 지금 컨디션 어때? 힘들진 않아? 잠깐 쉴까? 이런 말들을 꾸준히 던지다 보면 내가 언제쯤 힘든지를 알 수 있다. 그러면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이날은 내가 힘들 것 같고 이 날은 이 정도 스케줄이면 괜찮을 것 같고 이런 식으로. 실제로 나는 나에게 이렇게 많이 묻는다.
한계를 알았으니 그 적정선을 넘지 않게 나를 잘 돌봐야 한다. 쉬고 싶다는 말이 들리면 어디라도 잠깐 앉아서 쉬고, 밥을 먹으면 좀 괜찮을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지체 없이 밥을 먹으러 간다. 나도 이런 내가 정말 싫고 버겁지만 어쩔 수 없다. 외출한 상태에서의 이런 순간들이 결국은 내 기분과 컨디션을 유지하니까. 이런 걸 무시하고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면 결국은 예민해지고 짜증스러워지고 그 외출에 대한 기억이 그냥 '힘들었다'로만 남게 된다. 열심히 나간 외출이 즐거우려고 나간 외출이 그렇게 기억되는 걸 원하진 않는다. 그래서 좀 귀찮아도 귀 기울여 듣는다. 지금 컨디션 괜찮니.
이소라 유튜브 보는데 엠비티아이 이야기가 나왔다. 집에 혼자 있는 거 좋아하세요? 그럼 인프피시네요. 나이를 조금 먹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 엔팁처럼 살고 있지만 사실은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10년도 넘는 시간 동안 인프피의 삶을 살았다. 예전에 엄마랑 했던 말인데 엄마는 쉬는 날 집에 있으면 우울하다고 했지만 나는 쉬는 날 하는 외출이 버겁게 느껴졌던 적이 많았다. 지금의 내가 아무리 붙임성 좋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밖에 나가는 게 신나도 결국 나는 본투비 인프피다. (이 말을 적기까지 너무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남들보다 가진 체력과 에너지의 버짓이 조금(많이) 적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도 어쩔 수 없다. 그게 사실이니까. 가진 게 적은데 남들처럼 살려고 하다간 뼈도 추리지 못할게 뻔하다. 그런 경험이 많기도 하고. 나는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과 쓰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항상 채우기만 하면 그 에너지가 내 안에서 부패해 버리고 너무 쓰기만 하면 또 금방 동이 나서 내 기분을 공격한다. 아래에 적을 말들은 내가 치열한 자아성찰과 고민 끝에 알아낸 나의 에너지 사용법이다.
내가 에너지를 얻는다고 느끼는 순간이 몇 가지 있다.
1. 잘 자고 늦지 않게 일어나서 맞는 아침.
2. 해를 받으며 숨을 고를 시간이 있을 때.
3.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평온한 상태일 때.
4.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나만 하고 싶은 걸 할 때.
5. 눈을 감고 10분 안에 잠드는 편안한 밤.
자세히 적으면 더 많겠지만 사실 이것들이 전부라고 봐도 된다. 적고 보면 나는 거의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네. 그리고 너무 좀 까다로운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현대인에게 존재하긴 하나..? 어쩔 수 없다. 본투비 인프피니까. 최대한 방을 항상 깔끔하고 단정한 상태를 유지한다. 내가 방 안에서만큼은 뭔가 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아침 시간도 보통은 좀 비워두거나 일찍 일어나려고 한다. 여유롭게 아침을 보내야 하루 전반이 가뿐하니까. 잠에 취해서 아침 시간이 분주해지면 나는 하루가 통째로 버겁게 느껴진다. 그럼 그날 또 너무 힘들고 그럼 그날 잠도 잘 못 자고 다음 날 아침도 구리고 또 분주하고 시간은 없고 체력도 없고 힘들고 버겁고(이런 스탠스가 줄줄이 사탕처럼 되겠지.)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하루는 잘 자고 일찍 일어나서 책상에 앉아 해 받으면서 일기 한편 쓰고 잠깐 하고 싶은 거(게임, 애니시청, 드라마) 하다가 여유롭게 준비하고 나가서 재밌게 놀고 집에 돌아와서 늦지 않게 잠드는 하루다. 그리고 최근엔 이런 루틴을 적당히 잘 유지하고 있다. 오늘도 적당히 일찍 일어나서 모닝페이지 썼고 에반게리온도 봤고 널널하게 씻고 준비하고 이 글도 한 호흡에 적었다. 이제 나가면 짝꿍 만나서 재밌게 놀겠지. 오늘 해방촌 가기로 했다. 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