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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Feb 16. 2016

개 한마리는 죽여야 살아남는 세계

월급쟁이 단상

 번화가에 술을 마시러 가다 보면 개를 내놓고 장사를 하는 가게들이 꽤 많다. 나는 큰 개들이 가게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마땅히 저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 데리고 와 장사를 하는구나'라고. 그러나 비가 오거나 너무 추울때는 그 아이들이 보이질 않아 맡길만한 곳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데리고 와서 밖에 메어놓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맑은 날에는 그 개들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터치를 받는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주인 아닌 낯선 이들의 터치는 개들에게 있어서 성추행 당하는 것과 같은 스트레스를 준다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아무리 개가 사람을 좋아하는 종이라고는 해도 차마 한 생명에게는 못할 짓이다. 그걸 주인이 알건, 말건 말이다. 실제로 하루하루 말라가는 모습이 눈에 띄게 보이는 아이도 있었다.

 얼마 전 현장에서는 일 때문에 개 한마리를 데려왔지만, 너무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고 불안해 해서 활용을 포기했다. 그 아이가 그런 표현을 하지 않았더라도 주인과 떨어져 낯선 이들과 있다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동물들에게만 가혹함이나 무시가 발휘되는 건 아니다. 업무 회의를 할 때 의견들 사이에서 종종 여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혹은 편견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경우, 그런 딴지들은 그냥 일을 재미없게 만드는 고루하고 지엽적인 의견으로 치부된다는 걸 알았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들을 들려주더라도 그것이 편견에 기초한 캐릭터에 기반해서 나아간다면 그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프로젝트가 당장 성과를 거두지 않으면 그 일을 하는 이들의 일자리는 결국 불안해진다. 사람들은 편견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관심의 총량이 곧 성과가 되는 세계에서는 무엇이든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들이 이야기 해주는 건 단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개 한마리 정도는 죽이고 사람 하나는 무시할 각오를 해야 소위 '성공'에 가까이 갈 수 있다. 아니, 살아남을 수가 있다. 개가 소중합니다. 생명이 소중합니다. 여성도 똑같습니다-라고 해 봤자 그것은 고루하고 지엽적이며 아직 배가 부른 의견일 뿐이다. 모두가 뜻이 맞아 그런 올바름을 이뤄내더라도 시장은 결코 그 올바름을 바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단기간내에 먹히지 않으면 올바름을 추구한 이들을 기다리는 건 해고와 실패뿐이다. 그 말은 이게 누군가의 인성에 기대거나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을 한지 5년이 다 되가는 지금,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말한 '단호한 결의'가 무슨 뜻인지 요즘 들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단호한 결의를 가지는 것은 좋다. 누군가를 상처입히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관철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상관없는 누군가를 내몰지 않는 단호한 결의를 가지고 싶다. 상처를 줘야 한다면 나 자신에 대해서거나, 혹은 그런 잘못된 주장을 하는 이들에게 줘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살아남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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