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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Oct 15. 2018

기본만 해도 혁신

백종원의 DBR 인터뷰를 보고

 백종원의 DBR 인터뷰. 재밌는 부분들이 많다. 회사에 걸려있는 글 중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누구도 할 수 없을 만큼’ 이란 글이 있는데. 그야말로 이에 적합한 사람이라 할 만하다. 인터뷰를 보는 내내 감탄했다. 이래저래 말이 많지만 백종원의 비즈니스 모델이란 결국 수익이 남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좋은 재료를 쓰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맛을 내는 것이다.


 이렇게 적어놓으면 참 쉬운데, 문제는 그 배경이다. 내 돈 내고 만족할만한 식당들의 잘 없는 한국에서, 이 정도의 부담없는 가격에 좋은 수준을 제공하는 업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이 기본조차도 제대로 안하는 (심지어 대기업 프랜차이즈들 조차) 지금까지의 상황이 백종원의 사업을 '혁신'이라고 부를 수 없는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혁신으로 보이게 만든다. 기초중의 기초를 제대로 해서 수익을 낸다-한국에서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모델인가. 그래서 대부분이 돈을 벌기 위해서 뭔가 갑질을 하거나. 식당이 더럽거나. 맛이 없거나. 가격이 비싸진다. 사실 사업자의 개개인 역량을 탓할 수 없는 구조 상 필연적인 부분도 있다. 


 일본이었다면 백종원의 식당들은 음식의 퀄리티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오히려 요식업의 퀄리티를 높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백종원의 음식이 문제가 있다고 눈치를 챌 정도면 미각의 예민함으로는 이미 대중적 수준을 어느정도 벗어났단 얘기다. 맛집러들에게 회자되는 식당들은 서울에 거의 모여있으며, 접근성이 모두에게 높은 곳이 아니다. 가격적인 측면을 따지면 장벽은 더 높아진다. 사람들이 쉽게 접하고 쉽게 지불할 수 있는 대다수의 식당들은 일관된 퀄리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요컨대 한국의 요식업 상황이란 게 진짜 그 수준까지도 아니란 얘기다. 서울만 벗어나도 맘 놓고 돈을 내고 만족할 만한 식당이 정말 드물다.

 소비자 중심주의, 소비주의...이런 것들의 폐해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분석 이전에 우리는 어찌됐건 내가 번 임금의 일부를 재화 구매에 사용하고, 거기에 대해 상식적인 수준의 상품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근데 꽤 최근까지도, 한국은 소비자가 낸 돈에 걸맞는 상품을 받은 적이 없는 저신뢰 사회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상당히 기묘한 상황이 되는데 상품거래라는 소비자의 잣대로 모든 걸 판단하는 상황이 만드는 부작용과, 파렴치한 사업자들의 불신 조장 상황이 서로를 강화하는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백종원의 모델이란 이래저래 논란이 될 수밖에 없고, 또 비록 혁신적 상품을 만드는 게 아니다 하더라도 많은 부분 기여하는 바가 있다. 그냥 '골목 상권 침해' 나 '자본가' 라는 워딩만으로 파악할 수 없는 사업가임에는 분명하다.

 백종원이 뭐 엄청난 혁신가니까 믿고 따라야 하는 위인이다... 이런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진짜 대단한 사람이다.) 많은 현자들이 말했듯이 그가 성공한 배경에는 한국 요식업에 대한 저신뢰와 사람들의 소비패턴 변화가 있다. 소비자들의 정보는 많아졌는데 상품은 이를 만족시킬만큼 좋지가 못하다. 외식은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 됐는데 사업자들의 변화는 느리고, 공급과잉 상태이다. 불만을 해소할 방법은 쉬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과정에서 백종원이 자신을 '밥장사꾼'이라고 솔직하게 밝히고, 효율적인 모델을 합리적으로 제시한다. 상품의 퀄리티가 최상급이라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돈값은 한다. 이는 분명 사람들에게 청량감을 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백종원 정도로 준비를 하고 사업에 뛰어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럴 시간적 여유를 제공해주지 않는 한국사회의 노동시장과 자영업 시장의 문제가 있다. 이런 면에서 얼마전 주간경향의 기사를 같이 읽어볼 필요가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전국 소상공인 실태조사’와 ‘창업기업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어렵다는데도 자영업에 뛰어드는 심리의 바탕을 확인할 수 있다. 소상공인들이 창업을 결심하게 된 동기를 묻는 문항에 ‘생계유지를 위해 다른 대안이 없어서’라고 답한 비율이 82.6%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자신의 사업이 성공할 가능성에 기대를 걸기 때문이라는 답이 그 뒤를 이었지만 이 응답이 가장 높은 업종인 전문·과학 및 기술서비스업에서도 30.6%에 불과했다. 급박한 생계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창업할 업종을 찾다 보니 창업 준비기간은 평균 10.5개월에 그쳤고, 창업교육 경험이 없는 경우가 82.4%에 달했다.

 

 80%이상이 생계때문에 하고, 준비는 고작 10개월 한다. 어디선가 본 글에서는 자영업자를 시작하는 경우는 자녀교육에 아직 돈을 써야하는 중장년 나이인 경우가 많아서 더더욱 준비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백종원은  '준비가 안되면 사업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일생을 걸어야 하는 일에 준비를 할 여유가 없다는 게 더 정확한 답변일 것이다. 그럼 이걸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개인이 책임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직장은 정년을 보장해주지 않고, 수명은 너무 길어져버렸다. 불안정한 노동 조건을 벗어나 '사장님'이 되는 길을 택한 후, 어찌어찌 자금을 모아 프랜차이즈를 하면 온갖 갑질과 부당행위로 직장다닐때보다 고달파진다. 준비부족으로 혼자 가게를 세우면 노하우 부족과 퀄리티 부족으로 외면당한다. 어찌어찌 살아남더라도 건물주의 갑질로 종국에는 범죄자가 된다.  더군다나 그런 식으로는, 백종원 정도의 가격을 낼 방법이 없다. 혼자 식재료 사고 요리하고 가게세 내면 어떻게 한 끼를 6천원에 파나. 그러나 사람들의 시대정신은 '가성비'기 때문에 평이한 퀄리티가 높은 가격을 받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니 식당이 인테리어나 컨셉, 분위기 등에 치중하다 본질을 잃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아사리판에서 합리적인 BM을 세워서 수익을 내고 있으니...백종원은 화제의 인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차 하는 말이지만 사회안전망이 지금보다 수준이 높고, 고용상황이 훨씬 좋고 안정적이라면 지금 같이 자영업이 난립할 일도 없었을 것이며 한다 해도 백종원이 말하는 것처럼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사회에 있었을 것이다. 백종원의 BM도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 표준적인 일이 되었을 것이고 말이다. 이런 상황 자체가 사실 속상한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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