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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Mar 26. 2019

타깃팅이라는 원죄


페이스북이 문제가 된 광고 카테고리 일부의 상세타겟팅 기능을 제한하기로 했다는 기사. 광고주들이 기업의 채용공고나, 금융권의 대출광고를 특정 인종/학력/소득 대상으로만 노출하는 시스템을 제공했다는 것이 문제가 됐고, 소송과 항의 등을 거쳐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한다.


혹시 모르는 분을 위해서 기록하자면, 페이스북은 상당히 상세한 타겟팅 기능을 제공하는데, 그 방법 또한 매우 쉽다. 원하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거기에 맞게 타겟팅을 제공해주는 식. 그리고 이걸 광고주가 소액단위로도 세팅하고 계속 실시간 추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강력한 툴이기도 하고.


나는 마케팅의 원죄는 타겟팅에 있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참 많이 했었다. 왜냐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또 민주주의 사회에 살기 때문에. 사업자가 특정 재화를 판다는 건 기본적으로 어떤 타깃, 계급을 배제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아무리 타깃팅이니 뭐니 하는 말로 포장하더라도, 인간 (구체적으로는 광고주와 타깃이 공동으로 이 '자본주의'에서 가지고 있는)의 편견이나 차별과 분리되지 않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때문에 최다 노출을 확보하기 위해 노출 채널을 늘리게 되면, 광고가 감추고 있는 배제/차별의 논리가 모두의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여기에 대응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 편견의 위력에 기대는 것이다. 두번째는 가보지 않은 길이다. 민주주의를 존중하면서도 타깃을 움직일 수 있는 호소력을 가지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밀어붙이면, 무시하게 되면 남성 타깃의 여혐광고가 나오고, 백인 타깃의 인종차별 광고가 나오고 만다. 왜? 인간은 자신에게 익숙한 것에 가장 잘 반응하니까...


페이스북은 첫번째 방식의 또다른 해법을 알려준다. 광고주는 자신의 광고를 부자/백인에게는 노출되지만, 고졸/흑인에게는 노출되지 않게 할 수 있다. 아주 쉽고 간단하게. 페이스북은 이런 선별작업을 그 어떤 광고시스템보다 잘 해내고, 은밀하게 제공해온 시스템이다. 딱히 다른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대로변의 옥외광고가 아니기 때문에! 구글의 타겟팅은 아직 페이스북의 타겟팅에 비하면 애매한 수준이다. 조금 과장하면, 페이스북은 정말로 광고주가 원하는 그 사람에게만 꽂힌다. 누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시스템은 예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결국 이 광고시스템을 잘 뜯어보면, 1원 1표라는 시장의 논리가 1인 1표, 혹은 천부인권이라는 민주사회의 논리와 배치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타깃팅이라는 배제의 논리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마케팅 일 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가지고 있어야 하는 질문인데, 무슨 거창한 이유에서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사회의 인민이기 때문이고, 마케터/광고라는 직업은 갈수록 사람들의 인내심을 사용자 동의조차 받지 않은 실시간 테스트를 통해 바닥내고, 효율을 중시한 다량의 메세지 제작을 통해 편견을 강화하며, 그 과정에서 사업자가 행하는 배제를 교묘하게 가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마케터나 사업자 개인이 엄청 비윤리적이고 악마같고...그래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 1원 1표의 구조가 조직과 사람을 그렇게 몰아가는 측면이 있고, 개개인이 거기에 저항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주 아름다운 접속사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케터라는 쉬운 직업(다소 냉소적 의미에서) 에도 직업윤리가 있어야 한다면, 1인 1표와 1원 1표. 혹은 시대정신과 1원 1표의 원리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이 그 윤리라고 생각한다. 타깃을 끌어들일 수 있으면서도, 배제의 논리를 허용하지 않는 크리에이티브와 전략의 구상. 어렵지만 시장경제에서 가장 해볼만하고 가치있는 일 아닐까? 그런데 이런 구닥다리 이야기, 사실은 뜬구름 잡는 소리일 뿐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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