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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Mar 11. 2020

미래를 고민해봤자 무엇하리

미래가 답답할때는 자신의 한심함을 돌아본다.

 미래에 대한 추측때문에 마음이 괴로울 때 내가 얼마나 추측능력이 개판이고, 의도한대로 인생이 안 흘러갔는지를 돌아보는 게 큰 도움이 된다. 어제도 혼자 앞으로 펼쳐질 나날들에 마음이 싱숭생숭하다가 돌아본 나의 유구하고도 한심하고 하찮은 실패들.


1) 2019년 초에 담당하고 있던 브랜드 하나를 중간점검 하고 가망 없으니 접자고 강력 주장함. 물론 그 브랜드는 지금 나름 잘 되고 있다. 접자고 했던 그 당시의 판단이 민망할 정도로. 물론 그렇게 주장한 나름의 이유들이 있으나 지금 와서 보니 사소한 문제들.


2) 담당 브랜드들에서 내가 잘될거 같다고 의견을 준 상품은 7~8할 정도 망했고 잘 안될거라고 반신반의한건 6~7할 확률로 잘 된다. 나중에 회고해보면 다 이유가 있다. 당시에는 잘 몰랐다.

3) 담당 브랜드에서 목표매출을 아주 자신감있게 예측하고 유관부서를 참 귀찮게 했는데. 결과적으로 1/5 토막난 결과가...이 역시도 나중에 회고해보면 다 이유가 있다.


3) 디자인에 특징이 없어서 어필하기 힘들거라고 생각한 제품이 정작 팔리고 나니 디자인 땜에 샀다는 사람이 많았다. 물론 디자인만이 강점인 제품은 아니었으나 디자인의 기준이 항상 식별력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순간.

하고많은 디자인 책 중 이런 책으로만 골라 읽으니 미감이 꽝이다.


4) 시즌이슈에 맞춰서 기획한 콘텐츠가 있었는데, 당시 시장 상황이 해당 제품에 점점 비우호적으로 돌아서고 있었는데 콘텐츠 힘으로만 돌파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유관부서에 강력 요구...결과는...


5) 예측 일 매출의 30%만 나옴. 근데 더 슬픈 건 담당자가 바뀌니까 매출이 올라갔다. 회고해보니 내가 제품을 이해하는 게 한계가 있었고 필요한 액션을 제때 취하지 못했다. 이 한계를 빨리 인정하고 담당자를 교체했다면 더 좋은 결과가 빨리 왔을텐데.


6) 초년생때 특정 업무를 맡아서 할때 상사의 요구사항들이 당연히 지당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 자신을 탓했다. 지금 와서 보니 무리한 요구였고 그 요구에 맞추느라 내 영혼만 거덜났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거 안맞추면 죽는 줄 알았다. 절대 그렇지 않은 것을.


7) 전 직장에서 내가 좀 별로라고 생각했던 분은 알고보니 엄청 좋은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라고 침이 마르게 칭찬했는데 주변에 민폐 끼친 경우가 꽤나 있다. 친구 한명은 나보고 앞으로 인물평 하지 말라고 함


8) 2013~4년에 30대 중반되면 회사 짤리고 먹고 살 길 없어서 자살할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서른 여섯이고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닌데...어찌됐건 내 예측보다는 멀쩡하게 살아있다.


9) 중학생 때 부모님이 유학시킬 생각으로 나를 캐나다에 보내놨더니 그 당시 나는 완전 찐 애국자여서 한국 너무 좋고 요요 너무 좋다고 다시 돌려보내달라고 함. 3개월 있다가 돌아와서 죽어라고 요요만 했음. 지금 내 영어 실력은 캐나다 가기 전보다 못함


요즘 아침마다 이거 본다.

10) 당연히 재수하면 원하는 곳 갈줄 알고 고3 수능 보고 원서 안씀. 그리고 나서 심지어 삼수를 했다.


11) '와 저 회사 잘되겠다 가고 싶다' 하고 첫 취업/이직 준비할때 알아보고 지원/면접까지 했던 회사들 대부분 지금 다 상황이 안좋아졌다. 부디 잘 이겨내시기를....


12) 2003,2016,2017 전국대회 우승할 줄 알았고 그때 우승 못하니까 진짜 요요 하기 싫어졌는데 지나고 나니 별거 아님  


12) 학부생때 마케팅의 마짜도 관심 없었고 회사 들어가서는 공연장 업무를 하고 싶었는데 마케팅에 배치됐고 뭔놈의 마케팅이야~자본주의의 앞잡이가 되어버렸다 하며 엄청 속상해 했는데  어영부영 이 일로 월급을 받게 됐고 심지어 매력까지 느끼게 됐다. 물론 일종의 스톡홀름 증후군일수도 있다.


13) '이 콘텐츠 잘 되겠는데?' = 안됨 사실 이건 내 어릴때부터의 유구한 전통인데 '와 쉬리 저거 진짜 노잼이겠다'부터 '와 미스터고 저거 잘되겠네'까지(이하 생략) 근데 첫 직장을 콘텐츠 회사로 갔고 거기서 7년동안 일을 했다.

심지어 미스터고 실패로 검색하면 해피레포트에 자료도 뜨네


 농반 진반처럼 써놨지만, 나는 내 미래에 대한 분석력이나 인물평가를 잘 믿지 않기 때문에 누가 '이거 어떨거 같아?'라고 물었을때 드는 내 생각들을 입밖으로 꺼내기가 매우 조심스러워진다. 특히 콘텐츠에 대해 판단하는 능력이 정말 없어서 그 업을 내가 못하겠다고 생각한 것이기도. 물론 이런 성향은 내가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내 편협함에 근거하고 있다. 예를 들면 당위와 현실 혹은 취향과 시장성을 구분하지 않으려는 성향 같은 것.


 최대한 겸손하고 보수적으로 판단하되 지금 해야 할 것을 적극적으로 해내는 것이 그나마 내가 가진 얼마 안되는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비판적 예지는 내 강점이 아니다. 물론 내가 예측 성공한 사례도 있었기야 하겠지만 내가 기억나는 한도 내에서는 잘 없기도 하다.

 어쨌든, 미래가 정리가 안될때는 거창하진 않더라도 자신의 실패들을 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물론 내가 겪은 실패들은 무슨 엄청난 실패들은 아니지만 하루 8시간 일을 하는 동안 그렇게 헛소리를 하고 실패를 했음에도 어찌어찌 살아남아서 밥을 챙겨먹고 있으니, 앞으로의 문제들을 걱정하고 예단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실패를 잘 갈무리하고 복기하여 반복하지 아니하되, 예측의 보잘것 없음을 항상 상기하며 현실에 집중할 것.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이거 안되겠네~하면 열심히 해보는 게 답일지도?...계획이란 결국 그 자체의 실현과 예측성보다는 자기통제를 위해 필요한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무계획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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