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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Mar 30. 2020

마케팅 잘하는 회사≠마케터 할 게 많은 회사

잘 구분 안하면 나중에 힘이 든다

 이 분석글을 보며 마케팅 실무자에게 좋은 회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종종 소개되는 대규모 콘텐츠/플랫폼 마케팅을 잘 뜯어보면 사실 마케터의 적극적 역할들이 잘 보이지 않거니와, 좀 더 생각해보면 직군을 떠나 스타트업과 같이 실무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요소들 또한 많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대기업이니까, 많은 자원이 투여되니까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단순히 조직이 크니까 실무의 권한이 적다는 개념이 아니라, 이런 업종에서의 마케팅의 역량이란 통상 생각하는 마케팅의 역량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마케터의 통상적 역할이란 타깃 분석, 채널 분석을 기반으로 다양한 소재와 액션을 기획하여 이를 실행하고 성과를 내는 일련의 활동들이며, 다른 직군 - 디자이너/사업기획/제작 - 과는 차별화된 영역을 이야기한다. 물론 꼭 그런 것이 있어야만 마케팅을 잘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다만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는 마케팅 실무자 혹은 마케터란 어찌됐건 회사에서 그 직군으로서 일을 하는 구체적인 1인을 의미한다. 무슨 마케터의 본질 이런 걸 생각해보자는 게 아니고...ㅎㅎ 좋은 조직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내가 할 게 없거나 생각한것과 너무 다르면 얼마나 힘든가. 

 카카오 페이지도 그렇고,  CJ E&M과 같은 콘텐츠 기업도 그렇고 콘텐츠업에서의 마케터 역할이 다른 업종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요인들이 있다.  

1. 회사가 강력한 채널을 가지고 있다
 통상 마케팅팀/마케터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미디어믹스를 효과적으로 짜는 역량. 즉 타깃을 고려한 효율적인 채널의 발굴과 운영이다. 방송국이나 포털은 채널에 대한 고민의 상당수가 이미 해결되어있다. 내부에서 집중할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회사 채널로 송출 내지 노출하면 된다.

 티비 방송국에서 디지털 채널의 발굴, 혹은 포털사이트에서 자신들의 기반 외 다른 채널의 발굴은 어느정도까지 중요성을 지닐까? 예를 들면, 방송국들은 콘텐츠 런칭 전 타깃 인지도 조사를 해보면 인지 경로의 90% 이상이 tv 예고편 시청인 경우가 많다. 여기서 마케터가 해야 하는 역할이란 무엇인가. 디지털 채널에서의 도달률 상승? 타깃의 90%가 티비로 인지하는데? 예고편 기획? 그것도 사실 마케터가 가져오긴 좀 어렵다. 아마 플랫폼들도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그 송출 과정 자체가 쉽지 않다. 회사의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에 내부에서 상위 편성을 따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다만 마케팅의 재미 중 하나인 채널의 발굴과 운영이라는 측면은 다소 떨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
 

2. 콘텐츠 판매이기 때문에 마케팅 요소의 상당부분이 크리에이터/디자인에 달려있다.
 
 콘텐츠는 사람의 관심과 감정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다. 이야기를 파는 마케터라는 건 얼마나 멋있어 보이나. 그러나 결국은 크리에이터가 일의 과정에 있어서 상당량의 지분을 가져가는 상품이기도 하다. 크리에이터가 이미 이야기를 만들며 누가 볼지, 어떤 메세지가 핵심인지, 흥행요소는 뭔지를 많이 구축해놓는다. 예를 들면, 이태원 클라쓰의 스토리와 그림체, 캐스팅을 벗어난 무엇을 마케터가 할 여지가 별로 없다.

 이로 인해 마케팅의 또다른 역할과 재미 - 담당하는 상품을 시장에 소구하기 위한 컨셉을 도출하고 이를 구체화시키는 것- 가 상당부분 감소한다. 같은 맥락에서 이미지/영상 디자이너의 역할 - 정해진 캐스팅 / 스토리 / 메세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내는 것 - 이 매우 크고 이 부분 또한 마케팅이 진행하기 어려운 역할이다.



 때문에 콘텐츠 기업에서의 마케터의 역할이란 사실 채널을 발굴하고 카피를 쓰고 소재를 만들고 광고를 기획하고...이런 역할이라기 보다는. 실제로 저 각 부서를 돌아다니며 전반적으로 일을 엮고 실행을 빨리 재촉/주도하는 역할이거나 마케터가 원래 해야 하는 시다 역할(ㅠㅠ) 을 더 하는 경우가 많을 수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 마케터 없이도 마케팅 마인드 충분한 크리에이터만으로 굴러갈 수도 있는 것이다...마케터로서는 최악이다. 하여, 이러한 업종들에서 높게 평가하는 마케팅의 역량은 지금 우리가 SNS나 브런치에서 자주 보는 좋은 마케터의 활약상과는 다소 다른 모델을 띄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역량 모델들도 지금 디지털 마케팅 일변도의 흐름과 별개로 자주 좀 소개되고 인기를 끌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더 나아가서 나는 콘텐츠 기업에서의 마케터가 가야 할 길은 결국 사업기획의 레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걸 도저히 할 자신이 없어서 다른 길을 택했던 것이기도 하고...이미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제작 역량과 IP들을 엮어서 수익화 할 방법들을 찾아내는 일 말이다. 물론 마케팅이 결국 팔리는 구조를 만드는 행동이라고 할때, 어떤 분야건 마케터는 결국 사업기획의 레벨을 요구받는다. 


 다만 콘텐츠업은 그런 요구가 다른 업종 마케터들 비해서 좀 더 빨리 오지 않는가? 하는 얘기다. 회사가 마케팅을 잘 하는 것과, 어떤 회사에 들어가서 마케팅을 잘 배우고 실무자로서 보람을 느끼며 성장할수 있느냐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특히 콘텐츠업 쪽은 더욱 그런 것 같다. 일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이런 것들을 잘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면 그때는 사실 무슨 마케팅을 하고 싶은 것인지도 잘 몰랐으니까. 만약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후자를 좀 더 먼저 경험해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일을 택할때 항상 중요한 지점은 내가 어떤 업무를 하고 싶고, 어떤 것을 배우고 싶은가-인 것 같다. 그것을 모른 채 내가 팔려는 상품의 종류에 혹하면 많은 고민과 상념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다들 사업기획을 노리면서 마케팅을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런 레벨보다는 실무에서의 꾸준하고 소소한 보람과 성장을 더 원하는 사람이라 이런 생각이 든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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