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대학교 3학년 때 교양으로 문화인류학을 들을 때 이야기다. 자유주제를 선정해서 인터뷰를 해오는 과제가 있었다. 수업을 듣는 지인 하나의 주제가 '진화론vs창조과학'이어서 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내가 아마 예전에 진화론자다 어쩌다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어느 쪽을 믿냐는 질문에 진화론이 당연히 사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고, 근거를 물어보는 질문에 대해 그 당시의 내 생각을 조목조목 전달했다. 근데 정작 인터뷰를 하던 사람이 약간의 불쾌감을 표시하며 '잘 알았으니 그만하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조금 황당한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아마도 열심히 강력하게 교회를 다니는 분이었던 것 같다. 넷플릭스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이하 그지평) 를 보며 그 경험을 떠올렸다.
-
<그지평>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고, 이것을 입증하고 알리기 위해 자기 인생을 내던지고 열혈 음모론자들을 다룬다. 'Flat Earther(평평 지구인)'라고 자신들을 지칭하는 이들의 모임을 조직하고 이끄는 사람, 그와 함께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는 사람, 다른 지부에서 그런 활동들을 하는 사람들을 담아내면서 과학자, 과학 저널리스트, 심리학자들의 의견들을 같이 담아내는 구성이다. 당연히 <그지평>은 평평론의 편을 들지 않는다. 다만 이 다큐는 그들에 대해 과학적/사회적으로 생각해보자고 계속 질문을 던진다.
다큐를 계속 보다보면 답답함과 실소, 한심함 등이 밀려온다. 아마 이 느낌의 첫번째 원인은 과학적 사실을 이상하게 이해하고, 편견에 사로 잡혀 있는 이들을 보는 데서 오는 것일 테다. 중요한 건 두번째인데, 이들이 그다지 호감을 주기 어려운 모습들이라는 점이다. 어딘가 결핍되어있고, 서툴고, 답답하다. 물론 평평론을 그냥 가벼운 마음에서 믿는 이들도 있고 겉으로는 유창한 언변에 호감형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큐에서 다루는 이들은 전업 활동가처럼 평평론을 주류이론으로 만들기 위해 인생을 몰빵한 사람들이고, 몰빵러들이 대개 그렇듯 균형을 잃기 십상이라서, 이들이 만들어내는 오류의 무한궤도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비슷한 류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
이들이 애시당초 그런 음모론에 빠지게 된 것이 자신을 둘러싼 어떤 환경과 비호감의 문제때문이라면, 내가 맨날 하는 얘기처럼 이들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이와 관련해서 다큐에서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나온다. 과학자들의 모임에서 한 과학자가 나와서 연설을 하는 장면이다. 그의 이야기의 요지는 이렇다.
"과학을 대표하는 사람들은 평평론자들을 비웃거나 몰아세워서는 안되며, 그들이 가진 비판적 사고와 실천력을 좋은 방향으로 쓸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한다. 친절하게 반박해야 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들을 몰아세워 보이지 않게 하고, 그들을 세상의 끝으로 몰아내면 우리는 결국 그들을 잃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대략 저런 내용이다. 들으면서 참 멋진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상상하니 한숨이 나온다. 과학적 사실관계는 그럴 수도 있다 치자. 정치적 지향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종교적인 부분은? 호감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 2>에서 나오는 옴진리교 교인들 이야기도 생각이 났다. 착하고 순하지만 어딘가가 묘하게 현실감각도 없고, 호감을 주지도 못하고, 그런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이 옴진리교밖에 없었기 때문에 결국 거기에 모여서 그런 사단을 냈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런 게 한두번인가. 이 파편화된 세계 속에서는 아무도 비호감인 타인을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쓰려고 하지 않고, 쓰는 순간 그 관계의 책임은 모두 한 개인이 지게 된다. 정말 안타깝고 우울하게도 그런 이들은 관계에 서툴고, 타인을 갉아먹기 쉬워서 결국 또 상처만이 반복된다. 결국 비슷한 이들끼리 모일 수밖에 없지. 그렇게 광화문에 태극기를 든 노인들이 모인다. 허경영의 궁전에 사람들이 모인다. 평평론자들이 국제회의라는 것을 개최한다.
<애국청년 변희재>를 두고 사람들이 많이 비웃었지만, 나는 그 다큐멘터리가 그렇게 소외된 이들이 어떻게 비뚤어지는지 그 순간을 잘 포착한 좋은 영상물 (차마 작품이라고는 못하겠다)이라고 생각했다. 영상 속에 계속 나오는 변희재를 쫒아다니는 고등학생은 어떤 경로를 통해 그를 알았고, 나중엔 변희재 당선을 위해 삭발까지 한다. 근데 그 소년은...정말 호감을 가지기 어려운 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를 그렇게 내몬 요인 중 그의 선택은 몇퍼센트나 되겠는가.
-
심리상담 과정에서 내가 겪었던 비슷한 경험, 그러니까 그런 자들과의 관계형성에 대해서 토로했을때 선생님의 말은 '그런 관계는 건강에 해롭고, 그런 이들은 3년 이상 애착이 형성되도 바뀌기 어렵다. 그러니 그냥 일개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개인의 삶을 생각하면 그게 맞지. 나도 앞으로 내 인생에서 타인에게 받은 호의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남에게 너무 쉽게 상처를 주는 이들을 위해 나의 에너지를 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을 넘어선 사회에서 그렇다면 그런 자들은 누가 챙겨줄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지평> 다큐 속에 나온 평평론자들 이야기도 비슷하다. 음모론을 원래 좋아했고, 약간 부적응이다. 광신자 성향들도 간간히 나온다. 근데 나는 진실을 탐구하다보니 친구들도 떨어져 나갔고 가족도 떨어져 나갔고 이제는 이 길밖에 없다. 이것은 선과 악의 대결이다...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다. 퇴로가 막혀있고, 그들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도 적다. 계속 문제는 악화된다. 그런 말도 안되는 이론에 대해서 굳이 시간을 들여 반박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의 급을 높여주는 일이고, 무익한 에너지라는 과학자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미 음모론에 뇌가 물든 이들에게는 그런 무대응 자체가 '자신들의 진실'을 입증해주는 증거가 된다. 도대체가 끝이 안나는 악순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과정들을 보며, 인간은 정말 외로운 존재구나, 정말 한끗 차이로 달라지는 존재라는 생각을 다큐를 보는 내내 계속 했다. 영상 속 그들에게 정말 중요한 건 평평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걸 통해서 내가 소통할 사람들과 공동체가 생겼다는 사실인 것처럼 보였다. 모여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계획을 논의하고 서로를 격려한다. 다큐 막판에 '국제회담'이란 걸 열면서 주최자들과 참가자들이 너무 설레고 좋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여러 의미에서 정말로 그 장면이 좋았다. 사람들은 같이 하는 것에서 즐거움과 안도를 느낀다. 그리고 그게 내가 꼭 대회를 준비할때 모습 같아서, 괜히 맘이 뭉클해졌다. (모임의 목적을 떼어놓고 말이다) 일베가 없어진다고 했을때 일베들이 '여기 없어지면 놀 곳이 없다'고 울었다고 했던가. 태극기 노인들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여기 나오면 말 통하는 사람들도 많고 젊은이들도 존경해줘서 좋다고 했었던 것도 생각이 났다.
요요를 하는 공동체가 이들과 얼마나 다른가. 태극기는? 일베는? 혐오/비과학의 공동체도 본질적으로 동일하니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취하고 있는 다소 우위, 혹은 합리적이거나 매력적인 입장이 그다지 우리 노력이나 선택으로 나온 결과가 아니란 이야기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면, 내가 믿는 것들이나 내가 무시하는 상대를 대하는 방식을 재점검해볼 수밖에 없다.
약한 자들이 모두 음모론을 믿고 그릇된 삶을 택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은 끊임없이 높아진다. 자신의 삶에서 끊임없이 소외되고 좌절한 경험은 사람들을 내몰기가 쉽다. 그런 경험은 때로 말도 안되는 음모로 자신의 삶을 해석하게 만든다.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기가 너무 힘든 이 세상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흐름들을 논박하고, 정치적으로 몰아세우는 것이 아예 무익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갈등과 소외는 또 해결되지 않고 반복된다. <그지평>을 보며 모두가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살 수 있는 세상. 관계가 풍성한 세상을 계속 생각해 볼수 밖에 없던 이유다. 그리고 더불어 내게 주어진 관계들에 대해서도. 그러하니 결론은 언제나 동일하게. 내가 얻은 것을 나의 노력이라 생각하지 말고 타인의 부족함을 타인의 책임이라 힐난하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