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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Jan 05. 2020

몸 없는 사랑

Her. 14.07.14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에서 김훈의 소설들을 일컬어 '똥과 오줌의 유물론'에 기반하여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하는 소설이라고 했다. 무슨 뜻일까? 본문의 내용은 길지만 거칠게나마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조건 혹은 한계로서 가장 명확한 것은 인간이 먹고,싸는 존재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 조건(똥과 오줌)을 잊는 순간 인간에 대한 이해는 실패하거나 타락할수 밖에 없다. 김훈의 소설은 그것을 직시하고 들어가기 때문에 그 어떤 작가보다도 더 인간을 이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신형철은 '똥과 오줌'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를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말처럼 '똥과 오줌의 존재'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 말이 거부감이 든다면, 영혼을 가졌지만 결국 먹고,싸고,자야하는 몸을 가진 존재라는 말로 바꾸어도 무리는 없다. 아무리 고상한 일들을 하더라도 사람이 처한 이 물질적인 조건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라 몸을 가진 이상, 사랑하는 대상을 계속 확인하고,만지고,느껴야만 우리는 사랑을 유지하고 키워나갈수 있다.

 물론 사랑에 대해서는 두가지 입장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플라토닉이 가능하다는 관념론. 다른 하나는 몸 없이는 마음도 없다는 유물론. 아이러니하게도 전자는 결국 갈증에 시달리다 이별을 택하고, 후자는 뉴스에서 '호르몬이 결핍되면 사랑도 없다'라는 기사를 인용하다 사랑 자체도 찾지 못하곤 한다.  


 사랑에 있어 정신과 몸 둘 중 하나가 없는 것은 우리에게 왠지 모르게 도착적인,혹은 결핍되어 있는 느낌을 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몇년전 화제가 되었던 <러브플러스>라는 연애게임에 빠진 이들에 대한 뉴스나, <화성인 바이러스>에 나왔던 애니메이션 쿠션을 사랑하는 남자에 대해 우리가 느꼈던 감정들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Her>의 사만다에 대한 테오도르의 사랑 또한 이와 같을지 모른다. 가짜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진짜일수도 있지만, 무언가 비어있는 진짜라는 거다.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가 사만다에게 느꼈던 감정이 거짓이거나, 흉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OS와 연애하는 자신이 미친것 같냐고 묻는 테오도르에게 에이미(에이미 아담스)는 '어차피 사랑은 미친거야'라고 멋지게 말해준다. 물론 에이미의 말처럼  광기와 사랑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지만, '미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결국 사랑'이었음을 유지하고 보증해줄 수 있는 것은 대상의 실재 여부라고 말하면, 사랑에 대해 너무 보수적인 관점일까. 우리에겐 몸도, 영혼도 다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는 꼭 인공지능을 들고 나오면서까지 입증할 문제는 아니다. 결국 사람 대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우리가 유년기, 청소년기의 연애를 생각하면 부끄러워지는 것은 그것이 어떤 균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몸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불순하게 느껴졌거나, 혹은 몸만을 생각했거나. 플라토닉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그 때 말이다.




  서로간의 터치가 소원해지면, 대화가 소원해지면, 몸도 마음도 결국 나와 멀어지는 타인으로서의 모습이 부각되면 부각될 수록 우리는 결국 그 사람과 사랑하기 어렵다. 둘이 같이 시작하는 연애에서 균형이 깨지는 순간 재발견되는 것은 결국 나의 자아이고, 이 순간 더이상 사랑은 지속될 수 없다. 그렇게 본다면 헤어지는 연인들이 상대를 잡기 위해 말하는 '그냥 곁에만 있어줘'라는 말은 내 터치에 반응하는 연애시뮬레이션 게임보다도 못한 것이다. 하물며 균형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연애란 굳이 말하여 무엇할까. 



  많은 이들이 <Her>가 훌륭한 로맨스물이라 말하며 그 속의 명대사들을 인용하지만, 영화의 진짜 힘은 사랑에 대한 대사들 속에는 없다. <Her>에서 나오는 수많은 말들은 다른 로맨스물에서도 찾을수 있는 흔한 것이다. 그러나 사만다와 테오도르 사이에서 피어 오르는 공허함은 <Her>만의 독특한 것이며, 다르게 말하면 '순수한 사랑' '관념적 사랑'의 불가능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발언이기도 하다.사랑에는 결국 몸과 영혼. 모두가 있어야 한다는 말.  이것이 이 영화의 본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테오도르가 사만다를 떠나보내는 순간 그가 서있던 밤은, 사실 이별 후에 온 것이 아니다. 그 침묵의 밤이 영화 내내 균형이 존재하지 않던 둘 사이의 관계에 깔려있던 것이라면 너무 슬픈 평일까? 세상에 존재하기 어렵지만, 존재한다 해도 겪어보고 싶지 않은 로맨스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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