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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Jan 18. 2020

버리는 사람. 기르는 사람.

전세를 구할 일이 있어서 집 옆의 부동산을 찾아갔다. 찾아간 이유는 별 다른 건 아니었다. 아침마다 그 부동산 앞에 털이 길고 이쁜 냥이가 나와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던 게 생각나서 그랬다. 낙성대로 이사를 올 때 부동산 사장님들이 하도 '고양이 안키우면 안되요?' 라고 물어보셨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집사 사장님이니 집사의 설움을 좀 알아주시겠지. 하고 말이다. 들어가서 조건을 말씀드리고 고양이가 눈에 띄어서 왔다고 말씀을 드리니 너무 좋아하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알고보니 사장님이 원래 키우던 고양이가 아니었다고 했다. 근처에 버려져 있던 것을 사장님이 데려다 키우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임시보호 정도로 생각했다가 지금은 가족이 되고야 말았다고 했다. (이게 집사들의 가장 흔한 패턴이다)


 첨에 데려왔을때는 너무 삐쩍 말라서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보니, 이가 다 상해서 전발치가 필요한 상태였었다고. 몸도 성한 곳이 잘 없어서 사장님의 추측으로는 이 아이를 키우던 사람이 아마 치료비때문에 버린 것 같다고 했다. 다행히 이 상가 사람들이 다 고양이에게 호의적이고 집사인 분들도 많아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병원비를 마련했는데, 재검사를 받아보니 암이 발견된 것이다. 나이가 13살 정도로 추정돼 수술은 너무 큰 위험부담이라 결국 남은 생을 잘 돌봐주자는 생각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하셨다.  


 기가 막힌 것은, 아이의 생활패턴이 가게 주변을 어슬렁 거리는 생활패턴이다 보니 그 사이에도 애를 한번 누가 데리고 갔다가 버렸다는 것. 상가의 인기묘가 엄한 곳에 버려져서 울고 있는 걸 누가 알려줘서 허겁지겁 다시 데려왔고 그 뒤로는 이름표 달린 목줄을 달아놨다고. 인간들 참....


 지금은 밥도 잘 안먹고, 우유와 쮸르 정도만 먹는다고 했다. 고양이들 유당불내증이라 우유가 안좋다고 들은거 같은데 괜히 또 그런 이야기를 하면 사장님 마음이 좋지 않을 거 같아 펫밀크와 습식사료를 몇개 사서 나중에 가져다 드릴 계획이다. 근데 사장님은 아이 이야기를 하면서 너무나 즐거워 하셨다. 언덕 위에 있는 전세를 보러 가는 내내 집 이야기는 안하고, 오며가며 삐루와 그 아이의 이야기만 했다.


 고양이들은 새초롬한게 너무나 매력이죠. 너무 이쁘죠. 보고 있으면 너무 좋죠. 행복하죠. 등등등. 사장님도 나도 싱글벙글. 상가 사람들이 고양이를 워낙 좋아하니 그 아이도 아침마다 돌아다니면서 간식 수금(ㅋㅋㅋ)을 받는다고 했다. 김밥집 가서 간식 한입. 치킨집 가서 한입. 동물병원 한입. 고양이도 고양이지만 상가의 그런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집은 못구했어도 괜히 계속 기분이 좋아졌고, 돌아와서 삐루 궁딩이를 톡톡 두드려줬다.


 한쪽에서는 병원비가 많이 나온다고 아이를 버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합심해서 아이를 키운다.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을 그렇게 해줄 수 없음은 안타깝지만, 그 한마리를 그렇게 돌본다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버리고 학대하는 이들은 항상 눈에 잘 띄지만, 돌보고 거두는 이들은 찾아내기 전에는 알기 어렵다. 그렇지만 후자가 더 많을 것이라고 나는 아직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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