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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Feb 02. 2020

도대체 의미가 뭔데.

 심리상담을 받은 지가 10회차가 다 되간다. 나는 정말 받을 수만 있다면 모두가 꼭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상담 덕에 나는 일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고, 회복력도 좋아졌다. 아버지 문제로 인해 시작한 상담이었는데, 결국 나의 문제들을 상담하고 있다.

 근데 상담이 거듭될 수록, 정말 내가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버지의 문제도 학창시절의 문제도 지금의 문제도 아닌 지난 7년간의 전 직장생활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가 아직 그곳의 시간에 대한 답을 찾질 못했다. 거기서 일을 했기 때문에 지금 만족하고 있는 이 좋은 직장에 있다고 말할 수 있고 그게 맞는 답 중 하나라는 건 안다. 근데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내 마음을 달랠 수가 없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단점과 주저함들을 다 그곳에서의 경험 탓이라고 하고 싶진 않다. 그리고 거기서의 경험으로 인해 단단해지기도 했지. 그러나 내 마음의 많은 부분들이 그곳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상처도 정말...많이 받았다. 정말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막 대했던 인간들이 많았다. 물론 정말로 좋은 인연도 만났지만...정말 소수다. 정말로 소수다. 요즘 다시 한번 느끼고 있다.  


 상담을 받다가 나도 모르게 오늘 대학생때의 나는 이러지 않았는데. 나름 용기도 있고 자신감도 있는 사람이었고, 뭔가 주도하고 그랬던 사람이었는데. 이런 내 장점들이 그곳에서의 7년동안 그냥 다 삭아 없어져버린거 같다고 토해냈다. 말을 한게 아니라 토해냈고, 그렇게 말을 해본 게 정말...거의 처음이었다. 근데 그 말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냥 울고 말았다. 너무 짜증이 나기도 했고, 그런 것에 사로잡혀서 내가 가진 것들에 계속 만족하지 못하는 것도 싫었고, 그 그지같은 곳도 싫었고...하여간 모든 것이 싫고 한심해서 눈물이 났던 것이다!


 그 찐따들이 모인 동네에서 나는 정말로 나를 잘 지켰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정말 많이 노력했다. 근데 그것 뿐이다. 거기에만 너무 많은 힘을 쏟았다. 일과 생활을 어떻게든 지키려는 집착. 회사사람들과 거리를 두려는 태도. 그런 사소한 것들 뿐 아니라. 그냥 결국 그곳에서 인정받지 못했고. 정의롭지도 못했고. 나를 후려쳤던 팀장과 선배들을 골려주지도 못했으며, 심지어 제대로 성과도 못 낸채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똘똘 뭉쳐서 응어리가 진 거 같기도 하다.


 그게 그냥 결국은 인이 베겨서 이 지겨운 소극성과 우울의 기초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니. 그 인간들을 찾아가서 정말 귀싸대기라도 때려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오늘 잔뜩 화가 났다. 왜냐면 난 여기서 나름 열심히, 그리고 어느정도 잘! 하고 있는데. 왜 그때는 그렇게 못했지?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다.


 구조조정 때 나에게 너는 어차피 혼자하는 일이 어울리지 사회생활은 부적합하다고 말한 인간. 군만두 서비스 못받아온다고 눈치 주던 작자. 내 사생활과 취미를 무쓸모하다고 놀리던 자. 신입사원의 수준이 뻔한 걸 알면서도 나를 곯려먹고 압박했던 광고주. 허구한날 모이면 얼평하고 나이트 가고싶어서 안달난 짐승같은 남자 무리들. 회사 돈이나 떼먹고 나른 주제에 맨날 사람 후려치던 부장. 남 민망하게 하는 짓말 골라 하고 그게 무슨 영업의 기초인것처럼 말하던 자. 학교 선배랍시고 훈수나 두던 찐따. 뭘 말해도 들어먹지 않는 멍청이 팀장들. 지금 생각하니 진짜 일렬로 세워놓고 다 빠따 때리고 싶다...내가 잘났고 걔네가 못났다는 게 아니다. 내가 신입이고 대리 초년이고 뭐 얼마나 잘났겠는가? 근데 무례하지는 말아야지. 인간들아.


 나는 신입연수 첫날부터 거의 우울증 걸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왜? 앞으로 이 삶이 결코 좋을리가 없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 예감이 놀랍도록 들어맞았던 것이다. 그 찐따같은 시간들이 대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단 말인가? 바보같이 보낸 7년을 생각하면 정말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날 거 같은 기분이다. 스물여덟의 신입사원이, 사직서를 내는 서른넷이 될때까지 얻은 것은 약간의 강함과 그럭저럭의 사회경험이고, 잃은 건 건강, 자신감, 안정감, 당당함....정말 이 느낌을 정말 잘 정리하고 싶다. 그래도 그 시간을 결국 내가 택했고, 내가 도망가지 못했고, 내가 성취하지 못한 것을....그래도 밥은 벌어 먹었으니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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