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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Feb 17. 2020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의미

 일어날 일은 어떻게 해도 일어난다. 그런 생각을 나는 이제 믿게 됐다. 운명이나 필연을 믿는다는 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렇다.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있는 초기 대응의 시기가 있다. 그 시기를 벗어나면 어떤 경로를 거치건 결국 같은 결과가 일어난다. 폭력적인 인간에게도 비폭력적인 인간이 될 수 있는 초기 교육의 단계가 있었겠지. 무슨 지식을 얻어도 남을 탄압하는 목적에만 쓰려는 자가 인간애를 가질 수 있는 초기 대응의 기간이 있었겠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앞에 펼쳐진 파국적 결과를 보고 예전에 이랬으면 어떨까. 저랬으면 어떨까. 고민하는 일은 정말로 의미가 없다. 그 결과가 나타난 순간부터가 우리가 다음 결과를 막을 수 있는 초기 대응의 시간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다음을 막는 일 뿐이다.

 나는 이 생각을 아버지의 조울증을 보면서 하기 시작했다. 응급실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10대때 반항을 좀 했으면 세상 무서운 줄 알고 여유가 생겼을까. 가족이 떨어져 살았으면 외로움을 빨리 깨닫고 세상과 좀 접점을 가졌을까. 그러나 그 모든 가정이 사실 나의 사고의 장난일 뿐이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 또한 금새 깨달았다. 아빠가 환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은 내가 태어나지조차 않은 시간이었고, 혹은 알아차렸다 해도 그를 설득할 수 없는 시간이었으니까. 


 어쩌면 우리가 겪는 모든 일들이 이와 같은 게 아닐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로지 슬픈 일 앞에서 다음 슬픔을 겪지 않기 위해 준비하는 일일 따름이다. 더군다나 그 조차도 정말로 슬픔을 막아줄 수 있는지 없는지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지난 일을 두고 나의 마음과 함께 이랬으면 저랬으면 가정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다음의 슬픔을 막고 다음의 기쁨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행하는 수밖에 없다. 여기에 우리 삶의 슬픔과 행복이 모두 다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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