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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Mar 17. 2020

02. 짧은 안심, 긴 터널

2019년 추석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아빠의 우울증 판정 이후 일주일 후, 추석에 집에 내려갔다. 마중을 나온 아빠는 매우 수척해져 있었고 말에 힘이 없었다. 엄마가 잠깐 다른 일을 보러 간 사이에 아빠의 손을 잡고 아빠의 상태를 들었다. 아빠에게 나는 우울증은 꾸준히 약을 먹고 치료하면 나을 수 있는 병이라고, 같이 잘 이겨내보자고 말을 하고 마중나온 아빠의 차를 타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집에 가서 보니 아빠의 상태가 정말 심각했다. 일단 밥을 거의 잘 먹질 못하고 있었다. 기운도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잠을 못자고 있었다는 것. 졸피뎀을 처방받아서 간간히 먹고 있었는데 그걸 먹으면 조금 잠을 청하지만, 그게 없으면 1시간을 채 쭉 자지 못하고 잠을 깼다. 그러고는 계속 서성거리고 불안해했다.

 서울로 돌아가기 전날에는 잠을 자지 못하고 일어나서는 나를 끌고 돌아다니며 집안의 상세한 구조나 문제시 처리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더니만 "아빠가 죽으면 이런거 다 처리해놓거라"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 당황스러워서 붙들고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자기가 이제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 같다는 것이다. 

 이유를 차근차근 물어보니 자신의 맥이 너무 빨리 뛰고 호흡이 가쁘다고 했다. 나는 엄마와 함께 아빠를 눕혀놓고 아빠가 떠나게 되면 잘 처리할테니까 걱정은 말라고, 그렇지만 오늘 밤 죽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하고는 아빠가 걱정하는 아빠의 맥박수를 재어서 보여주었다. 정상 맥박이 나왔다. 일종의 망상? 공황?이었을까. 자기가 죽으면 이 집이 결국 썩어 없어질거라고 슬퍼하는 아빠에게 나는 나중에 내가 이 곳에 들어와 살 건데 뭐가 걱정이냐고 말했다. 그러니까 놀랍게도, 아빠는 정말 들어와 살 거냐면서, 너 이곳을 안좋아하는거 아니었냐고 반색을 하며 좋아했다. 그리고 나서 조금 안심하더니 "이런 걸로 죽진 않는구나"라고 중얼거리고는 수면제를 챙겨 먹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서울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아빠,엄마와 주변 산책을 하며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빠를 붙들고 계속 이야기했다. 지금 아빠가 앓는 병은...아빠가 잘못 산 것도, 잘못 한것도 아니라고. 아빠의 뇌가 지금 힘이 든 거라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그리고 이제는 아빠의 친구로서 나랑 많이 얘기하자고 당부 또 당부를 하고 서울로 무거운 마음을 안고 왔다. 그렇지만 나아지겠거니...어제의 잠깐 반짝임도 있었고, 병원에 대한 거부감도 크게 없으니 괜찮겄게니. 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때는 그게 얼마나 낙관적인 생각이었는지 몰랐지. 정말로...



 그날 저녁, 서울로 올라와 친구들을 만났다. 언제나 그렇듯 그들이 날 놀리는 농담을 듣던 나는, 그게 정말 그냥 농담인 걸 알면서도 괜히 신경이 쓰여 다음날 숙취로 찡한 머리를 붙들고 고민을 했다. 계속 아빠 생각이 난 것이다. 바보같이 사회성도 없고 친구도 없고 그래서 남들은 그냥 털어버리거나 맘에 두지 않을 일들을 평생 맘속에 쌓아놓고 그게 마음의 병이 된 아빠를 생각하니 그게 내 모습과 뭐가 그리 다른가? 싶고...나도 아빠처럼 모난 성격이어서 친구들을 계속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닐까. 하고.

 그리고 실제로도 나는 소심하고 예민하고 모난 성격이라 어떤 국면에서 친구를 몹시 불쾌하게 하고, 친했던 사람들도 어느 시점엔가 멀어지곤 한다. 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들 떠나가면 나는 어떡하지. 그래서 애인에게 이런 고민을 메신져로 하면서 괜히 혼자 궁상맞게 엉엉 울었는데. 그러다 결국 견디지 못해서 친구들에게 내가 요즘 자꾸 모나게 굴어서 미안하다고.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친구들이 더 미안해하고 황당해했지만.


 그렇게 또 지지리 궁상을 떨다가, 아빠의 우울증이 제발 차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빠도 엄마도 너무나 불쌍하고, 나는 아직 가족과 하고 싶은게 많다. 자꾸 이게 시작에 불과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냥 나도 아빠도 무던-한 성격이면 얼마나 좋을까 등의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시 명절 연휴를 뒤로 하고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간간히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아빠 상태를 체크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추석 일주일 후. 아빠가 자살을 시도했다.

민방위 훈련을 받고 있는 중에 전화가 와서 받았다. 엄마가 울면서 말을 했다. 아빠가 칼을 들었다고 몸을 던졌다고. 엄마가 그렇게 울면서 얘기하는 걸 본적이 없었는데...그런데 그때 내 기분은 너무 당황스럽다. 무섭다. 끝장났다. 이런 게 아니라. '아 올 것이 왔구나' 였다. 


 왠지 나는 속으로 예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계속 수척한 아빠 상태를 보면서. 추석 이후 엄마가 전해주는 아빠의 상태들-환청, 착란, 불면, 귀신들린 듯한 묘한 눈빛-을 전해들으면서 아빠의 폐쇄병동 입원을 의논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래도 엄마랑 '아빠는 자살하지 않겠지'라는 묘한 믿음을 공유하고 있었는데...결국은 그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아빠는 의식을 잃었고, 사는 곳이 산간지역이고 응급환자기 때문에 닥터헬기가 원주 세브란스로 아빠를 싣고 갔다고 했다. 나도 짐을 챙겨서 가겠다고 이야기하고 엄마를 잘 달랜 뒤, 집에 가서 3일치 짐을 챙기고 원주로 떠났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당시에 마음이 착 가라앉아 있었다. 가면 숙소를 잡아서 엄마를 일단 쉬게 하고, 병원비를 알아봐야 할 것이고, 상태를 체크해야 하고...그런 투두리스트를 마음속으로 정리하며 조금 눈을 붙이기도 하면서 원주에 저녁 8시 반 경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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