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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Feb 19. 2020

조조와 흙밥을 먹는 아이들

<조조래빗>을 보다

밀린 시사인을 출근길에 꺼내들고 읽었다. 타이틀 기사는 <아동 흙밥 보고서>이다. 기사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무상급식 도입 이후 아이들의 점심식사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되었으나, 아침/저녁의 영양불균형 문제들이 심해지고 있다. 가난한 집의 아이도 적당히 버는 집의 아이도 굶지는 않지만 불균형하다. 빈곤층은 고기,생선,과일은 먹지 못하며 아이들은 ' 낮은 음식을, 혼자, 불규칙하게, 허겁지겁 먹는다' 결식이 줄어드니 사회는 아이들의 식사 문제가 해결된  알고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심각해졌다.

 돈이 없어서? 음식이 없어서? 물론 돈도 문제다. 국가가 저소득층 아동들을 대상으로 발급하는 복지카드는 지자체 부담이어서 서초구에 사는 아이는 7천원을   있지만 강원도의 아이는 4천원을 쓴다. 그조차도 편의점에서는 사용 가능하지만, 그나마 괜찮은 밥을   있는 식당에서는 사용할  없다. 아이들은 눈치를 보고 주눅들고  낮은 음식을 다시 허겁지겁 비벼서, 말아서 먹는다.

 돈이 불어나면 나아질 것인가?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며 같이 먹어줄 어른이 없다. 아이들은  과정에서 안좋은 식습관과,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격차와 외로움에 시달린다. 어른도 사실 사정은 딱하다. 먹고 살아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니 먹는 것은 뒷전이다. 어른이 없다. 그게 가장  문제라는   기사의 핵심이었다.

 기사를 보고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하여 일을 하고 애인을 만나 <조조래빗> 봤다.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봤는데 울다가 웃다가 2시간을 보냈다.  영화는 나치 독일 시절을 배경으로 히틀러 경호원이 되고 싶어하는 10 꼬마아이에게 벌어진 일을 그리는 이야기다. 영화는 정말 따뜻하고 슬프고 잔인하다. 따뜻함의 절반은 좋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베푸는 손길에서 온다. 나머지 절반은  따뜻함을 씨앗으로 아이들 스스로가 못된 어른들이 만든 왜곡에서 벗어날   온다. 물론 잔인함과 슬픔의 절반도 정확히  순간들에서 온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흙밥 보고서 기사 속에 나왔던 통계와 묘사와  활자들이 보여주는 현실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이 히틀러 치하의 나치독일 같다...그런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다. 어른들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상처를   있는지, 아이들의 마음을 얼마나 무시하며 짓밟을  있는지를 생각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만큼 어른들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힘이   있는지를 생각했다. 어른 또한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면에서는  세상에 그저 던져진 존재이고, 속수무책이지만, 적어도  눈앞에 놓인 아이들에게는 다를  있으니까. 그래서 어른이 아니겠는가. 나는 아이랑 노인이 밥을 굶고, 설움을 당하는  정말 싫다.돈은 정말로 중요하지만 돈이면  되는 것은 아니다. 무슨 일을   있을 것인가. 작게라도   있는 것들을 찾아볼 때이다. 왜냐면 계속 생각하듯이, 우리는  이상 우리의 어른을 탓할  있는 때가 아니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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