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타기인생 Mar 12. 2020

20년간 취미를 갈고 닦으면서 느낀 것들

기술 습득 과정을 묘사해봤습니다.

 제가 20년째 하고 있는 취미인 요요는 성인 기준으로 돈이 많이 드는 취미는 아닙니다. 가장 비싼 장비도 몇십만원 정도이고 요요 사용을 위한 소모품인 요요줄 등은 100줄 기준으로 3-5만원 사이죠. 주변에서 요요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도 비용을 듣고 나서는 그다지 비싼 취미는 아니라는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문제는...이 취미는 시간이 정말 많이 들어간다는 겁니다. 장비빨을 세울 수 있는 취미가 아닙니다. 재능이 있는 경우엔 좀 더 빨리 배우지만 어차피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은 비슷합니다. 물론 보통 선수가 10시간 걸릴 걸 1시간 만에 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요.  또, 기본적으로 몸을 쓰는 취미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배우는 데 드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납니다. 결국 이런 그래프가 그려집니다. 

x 축을 나이. y축을 각 항목의 가능성이라고 보면...


 모든 취미가 그렇듯 나이가 어릴수록 기술을 익히는 시간은 정말 빠르지만 경제력이 부족해서 장비를 맘껏 못쓰죠. 그러나 나이가 들고 (대략 20대 중반이 저 교차점 포인트입니다) 기술을 익히는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함과 동시에, 학생때보다 돈이 생기면서 장비를 살 수 있는 여력이 늘어납니다.

 이때가 중요한 분기점인데 연습을 하기보다는 새 제품을 사서 모으는 콜렉터가 되거나, 장비를 계속 사모으거나 하는 경우도 생겨납니다.. 예전에는 뭐 하나 익힐려면 1~2일이면 됐는데 일주일 2주일이 걸리고, 요즘 10대 선수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으니 의욕을 내기도 쉽지 않죠. 아예 더 이상 요요를 잡지 않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다만 희망적인 것은 이 취미가 몸을 쓰지만 격하게 쓰는 취미는 아니기 때문에 어쨌든 연습을 하면 나이가 들어도 늘긴 는다는 겁니다. 즉,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잘할수 있는 취미이고, 세상의 요요기술은 평생 죽어라 익혀도 다 못 익힐 정도로 많기 때문에 계속해서 즐기기에는 또 이만한 취미도 없습니다.

 계속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나이가 들 수록 연습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머리 좋은 플레이어들은 이미 10대때부터 효율적인 방법들을 고안해서 기술을 연습해왔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릴때는 그냥 시간을 투여하고, 센스가 받쳐주면 되기 때문에 이 과정을 도해해서 잘 생각해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현재 한국에서는 어쨌든 최고령 선수 중 하나이고(대회 참가자의 50% 이상이 10대 중후반-20대 초반입니다) 때문에 20년간 해온 연습의 과정을 복기해보고, 그 느낌을 기록해놓는 데 이 글의 목적이 있습니다. 부수적으로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몸의 감각이 너무 좋고 경이로운 것이라 이를 글로 표현해보고 싶은 목표도 있습니다.


연습을 통해 기술이 완성되는 과정은 크게 3단계의 과정으로 이뤄집니다.


1.기술의 창안 혹은 도해 (원리파악)
2.반복연습
 2-1. 전체 과정에 대한 감을 잡기
 2-2. 성공률을 높이는 반복연습
3.실전연습


 일단 최근에 제가 연습 과정을 기록해놓은 기술은 두가지입니다. 첫번째는 일본의 아라타 이마이 (Arata Imai) 선수의 오리지널 기술인데요. 이 선수는 매우 독특한 움직임과 리듬감을 가진 것으로 유명합니다. 링크한 영상의 1:52초 경에 나오는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중 움직임이 독특한 부분만 따서 익혀보고자 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밑에 추가로 설명을 붙여놓았어요.


1.기술의 창안 혹은 도해

 종목마다 양상이 다르지만 대부분의 요요 기술은 '오리지널 트릭'이라고 불리는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플레이어 스스로 만들어낸 움직임을 이야기하는데요. 저는 오리지널 트릭을 잘 만드는 선수는 아니고 기존의 여러 콤보들을 조합해서 사용하고, 콤보의 독창성보다는 자세,표현에 더 중점을 많이 두는 편입니다.

 때문에 기술을 배우기 전에 일단 영상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다운로드 받은 다음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부터 연습의 시작입니다. 동영상을 보고 진행할 경우, 모든 몸을 쓰는 취미와 마찬가지로 안/바깥 좌/우 상/하의 움직임을 구분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직접 배울 경우에는 조금 낫고요.

 저 기술도 이러한 방향파악이 어려운 편에 속합니다. 대략 30분 정도 관찰하고 따라해본 다음에 어떻게 하면 되는지 원리를 어찌어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 도해한 동작을 과정의 일부만 한번 연습을 해보는 과정이 따라옵니다. 이 기술의 경우 가장 복잡한 오른손 동작만 계속 연습을 해서 일단은 가장 복잡한 파트의 움직임을 몸으로 1차 이해하는 것이죠.

2. 반복연습

 도해를 하고, 일부분에 대한 이해가 끝났으면 다음은 전체 동작을 따라하면서 감을 잡고 성공률을 높여야 합니다. 이 단계는 여러 과정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1 전체 과정에 대한 감을 잡기


  요요에는 총 다섯가지의 종목이 있고. 제가 하는 종목은 양손을 다 쓰면서 빠른 회전 운동을 주로 만들어내는 투핸드 종목입니다. 이 종목의 경우 기술 하나를 배울때 파트 하나하나를 쪼개서 분할동작으로 배울수가 없습니다. 영상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전체 과정이 끊김이나 구분동작 없이 쭉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기술의 스타트부터 마무리까지를 계속 반복해보면서 감을 잡아야만 합니다. 당연히 이때, 아래 영상 같은 상황이 수십 수백번 발생하죠. 
 

이 과정이 제일 열받습니다. 원리는 아는데 몸이 안따라주는 구간.


  처음 반복연습을 시작했을 단계에서는 원리를 알고 있다 해도 뭔가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요의 움직임 자체가 원체 빠른 회전운동이기 때문에 몸이 동작들의 흐름을 잘 느끼지 못하는 상태죠.

  머리의 이해와는 별개로, 몸이 움직임에 적응이 되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변수가 늘어난 상태 (오른손으로만 해봤던 동작을 왼손까지 곁들여서 해야 하는 상태)에서 동작을 하려고 하면? 몸이 요요의 동작을 성공시킬 만큼 충분히 따라가질 못한다. 줄이 꼬이고, 회전이 죽고, 동작이 끊기게 됩니다.



 
그런데 반복연습이 누적되고 몸이 적응되면, 당장 성공률이 높아지지는 않더라도 명확한 느낌이 오게 됩니다. 각 흐름에서 요요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이고 느껴집니다. 그리고 어떤 동작이 막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파악이 된 상태에서 반복연습이 누적되기 때문에 100번을 해도 안되던 게 20번에 한번, 10번에 한번 하는 식으로 성공하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은 대략 아래의 순서로 오는 것 같습니다.

 a.요요의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b.어떤 포인트에서 막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c.기술이 한번, 두번씩 성공하게 되고 통제력이 생긴다.


 이를 테면 저 기술의 경우, 처음 반복연습을 할 당시에는 몸 앞에서 요요를 돌리고 안으로 다시 끌어오는 동작, 그 다음 팔 위로 올리면서 왼쪽 손에서는 강하게 회전을 걸어주는 동작. 그리고 마무리의 안쪽으로 끌어당기는  동작. 이 세가지가 뭉뚱그러진 상태였습니다. 영상을 보면 어떤 건지는 알지만 막상 해보면 다 과정이 뭉쳐있는 것이죠. 위의 영상에서 확인하다시피 거의 이 과정을 통제하지를 못합니다. 중간에 요요가 튀거나, 엉키거나 합니다.

 그런데 기술의 흐름이 '몸'으로 파악이 된 단박에 원인과 길을 알게 됩니다. 이 경우, 첫번째는 요요 바깥으로 내보낼때 줄을 내가 너무 길게 잡고 있구나. 두번째는 안으로 다시 끌어올때 회전력이 부족하구나. 세번째로 끌어오면서 왼손에서 회전을 걸어주는 릴리즈 포인트에 대한 박자감각이 부족하구나. 네번째로 끌어올때 요요가 기울어져서 회전력이 죽는구나. 몸이 체득했으니 각 포인트에서의 개선을 목적으로 연습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래 영상처럼 과정이 전반적으로 부드러워지고, 성공에 점점 가까워집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몸이 이 과정을 인지하고, 분리해서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순간들이 20년 동안 요요를 하면서도 가장 재미있고, 신기한 순간입니다. 제가 요요를 계속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 순간은 연습이 누적되면 진짜 아주 갑자기 찾아옵니다.  안보이던 게 보이고 개선 방향이 보이면서 질적인 도약을 하는 순간! 아마 재능있는 선수들은 이 과정이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오는 것이겠죠? 여기까지 오면 이제부터는 계속 연습만 하면 됩니다.

2-2 기술 성공을 위한 반복연습.
 이 단계에서는 기술 성공률이 조금씩 올라가면서 성공 당시의 느낌을 몸이 아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성공했을때의 감각을 이를 재현하는 방식으로 반복연습을 진행하게 됩니다. 요요를 던졌을 때의 각도, 요요 상태, 몸의 움직임과 타이밍 등이 딱 맞아떨어져서 기술이 성공하는데, 이 느낌을 상시상태로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겠습니다.

 당연히 시간과 연습이 위의 과정만큼 많이 필요합니다. 재밌는 점은, 이 단계에서 잠깐 연습을 멈추고 쉰 다음 다시 시도를 해 보면 몸이 그 단계까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성공률 50%를 목표로. 80%를 목표로 하는 식으로 계속 반복을 하다 보면. 결국 아래와 같은 순간이 옵니다. 인스타그램에 자랑할 때가 되었죠? 보람차고 신나는 순간입니다.

성공~! 지금 성공률은 7-80% 정도.


2-3 폼을 조정하기 위한 반복연습.
 
성공을 했다고 끝은 아니고. 이제 기술 자체의 성공률이 올라간 상태에서 폼을 조정하는 연습들이 필요합니다. 기술을 더 멋있고 이쁘게 하기 위한 과정이죠. 예를 들면 지금 저 기술영상의 경우 몇가지 부족한 점이 있는데, 하나는 앞에 붙는 도입부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과, 마지막 부분 동작에서의 몸 쏠림, 여전히 남아있는 요요 기울어짐 등을 수정하는 게 필요하고, 익힌지 얼마 안된 기술이다보니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는 점 등을 고쳐서 좀 더 좋은 폼으로 고치는 연습들을 할 예정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익힌 기술들도 이러한 과정을 계속 거쳤습니다.

3. 실전연습
 
  여기서의 실전연습이란 소규모 이벤트/대회 등에서 실제로 해당 기술을 넣은 프리스타일을 진행해보는 걸 말합니다. 당연하지만 기술을 혼자 할때와 실전에서 할 때의 성공률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실전에서의 성공률을 높여야만 정말 다 익혔다고 할 수 있죠. 예를 들면 작년 대회의 경우, 2018년 경에 전국대회용 구성은 이미 어느정도 완성이 된 상태였고, 이를 11월 이벤트부터 계속 반복해서 완성도를 높여갔습니다.

2018년 11월에 시작해서 3번 정도 이벤트 참가.


최종 버젼. 2019 전국대회. 완성도가 엄청 올라가는 게 느껴졌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제 경우엔 본게임인 전국대회에서 새로 익힌 기술을 한번이라도 완전하게 성공하면 성공률이 정말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실전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1년동안 계속 두고두고 연습하는 게 필요하더군요. 다만 이렇게 몸에 익혔다고 해도 폼은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에 기술은 계속 갈고 닦아주는 게 필요합니다. 이 변화무쌍함 혹은 끊임없음에 요요의 매력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합니다.



두번째 기술은 수많은 하이레벨 선수들이 기본적으로 익히고 있는 리버스 스테어케이스 (reverse staircase)라는 동작입니다. 스테어 케이스라는 기술은 몸 안쪽으로 원을 그리며 요요를 계속 위로 쳐내는 동작인데, 리버스는 스테어케이스 최고점까지 도달한 다음 다시 그대로 동작을 역으로 하며 내려오는 기술이죠. 영상은 아래와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쳤습니다. 올라가는 동작은 기초동작이기 때문에 몸이 완벽히 익히고 있으나 내려오는 동작이 낯설기 때문에 비디오를 보면 초반에는 엄청 허우적 대고, 궤도가 안정적이지 않은 게 보이실거예요. 기술을 익히는 데는 3~4주 정도, 일수로는 8일 정도 걸렸습니다.



 글이 좀 길어졌는데, 결론은 이렇습니다. 요요는 꽤 오랜 시간을 들여서 할만한 취미고, 몸이 개선되는 감각 혹은 몸이 어떤 동작에 적응하는 감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좋은 취미 중 하나입니다. 보다 많은 올드 플레이어들이 다시 현역에 도전했으면 좋겠고, 자신의 연습과정을 인지하지 못하고 시간만으로 돌파하려고 하거나 연습과정이 막혀있는 젊은 선수들은 자신만의 연습 과정을 확립해보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정도의 시간을 지나고 나서 보니, 이러한 연습의 과정 - 탐색 / 원리파악 / 반복연습 / 실전연습-을 경험해보고 계속하는 것이, 인생의 다른 많은 영역에도 꽤나 적용 가능한 부분이 많습니다. 인생을 보다 풍요롭게 사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은 덤. 그러니 즐겁게 요요합시다 여러분!


매거진의 이전글 대회, 스포츠로서의 요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