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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May 03. 2020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은 거짓이다.

그러니까 노력하고 즐기고 이해하자. 

    
요즘 내 하루의 낙이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엔딩이 점점 코앞에 다가온 드래곤 퀘스트 11. 다른 하나는 Dr.Mario라는 요요인의 유튜브 계정을 보는 일이다. 사실 이 계정 자체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98년부터의 대회 영상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분명 우리가 어렸을때 본 기억은 있는데 지금은 찾을 수 없는 대회영상과, 옛날엔 본 적이 없는 대회 영상들까지도 잔뜩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나 같은 올드멤버들은 정말 산타클로스 선물이라도 받은 기분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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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내가 요요를 막 시작하고 몰두했던 99-2001년의 영상들을 보고 있으면 다시 그때의 열의를 느끼게 된다. 당시 우리 집은 모뎀을 사용한 PC통신만 가능한 환경이었다. 그래서 세계대회나 미국 내셔널 시즌이 되면 대회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항상 문제가 됐다.


다행히 PC방이 한창 많이 생길 때여서, 대회 시즌이 되면 PC방에 가서 대회 결과를 확인하고 영상을 다운받았다. 그리고 2시간 넘게 영상을 돌려보면서 기술의 얼개를 파악한 뒤 집에 와서 부모님 몰래 연습을 했었다. 옆에서 사람들은 스타크래프트 하랴 뭐 하랴 바쁜데 나는 요요영상만 죽어라 보고 있었지.


근데 당시는 대용량을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프레임이 낮은 rm파일로 올라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막상 영상을 받아서 보면 얼개 파악이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낮은 프레임과 화질 때문에 투핸드 영상의 경우 원운동이 아니라 무슨 레이져 쏘듯이 쭉쭉 나가는 것처럼 보여서, 외국 애들은 한국과 다르게 레이져 룹을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미발달 인터넷 기술로 인한 착시였던 것이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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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가을 무렵, 미국 내셔널 대회가 끝난 이후였던가? 대학로 하이텔 온앤오프에서 열린 주말 모임에 나가 동아리 사람들과 투핸드 순위권 영상들을 함께 다운받아서 봤던 기억도 난다. 어떻게 저렇게 하나...미친거 아닌가...매트 할로우 왤케 살빠졌냐 (얼평 오짐) 등의 대화를 하며 괜히 가슴이 뜨거웠던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런 기억이 한두개가 아니다. 이런게 벌써 20여년 전 일이 되어버렸다.

특히 링크한 이 영상의 임팩트가 당시에 대단했다. 그때는 어린 마음들이라 반일감정도 꽤 있었을텐데, 화려한 프리스타일에 넋을 잃어서 영상 속 노골적 쟈포네스크도 별로 신경도 안썼던것 같다. 그때는 심지어 현웅이도 종기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요요를 잠시 쉬고 있었던 걸로 안다. 대열이 정도만 서로 알고 있었지...중 3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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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옛날 영상들을 다시 보며 2001년 이전의 투핸드 프리스타일들이 정말 매력 넘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요요 기술은 저 때보다 고도화됐고 요요의 성능도 빼어나다. 난이도는 비교도 안되거니와, 당연히 지금은 지금만의 멋이 있다.


하지만 긴 줄과 큰 움직임, 다양한 룹과 파운틴으로 3분을 채우는 모습.그리고 요요가 돌다가 마지막에 위에서 버티컬 룹으로 팍 꽂힐때의 마무리...이런 요소들과 흐름이 진짜 너무 좋다. 그 쾌감이 있다! 진짜...진짜 멋있다는 생각을 그때도 많이 했다. 솔직히 지금 봐도 멋있어 ㅠㅠ 이런 흐름들이 끊기지 않고 계속 전승(?) 되어 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요즘 투핸드 요요로는 같은 기술을 해도 옛날보다 줄이 훨씬 짧기 때문에 저런 느낌은 절대 나질 않는다. 그리고 투핸드를 오래 해본 늙은이들은 다 알겠지만...21세기 초 구리디 구린 성능의 요요들을 다루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정말 단순무식한 연습들을 당시엔 많이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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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내 생각들. 그때가 진짜 멋있지, 단순했지하는 감상들은 사실 편견일 것이다. 옛날 옛적 프리스타일들이 내 눈에 그토록 멋져 보이는 건 그 스타일들이 보편적으로 멋진 모습이라서가 아니다. 그저 내가 우연히 1985년에 태어났고, 99년에 요요를 시작했고. 그래서 그때 저런 영상을 볼 수밖에 없었고. 그 당시에는 그게 요요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멋짐이었고, 그래서 거기에 흠뻑 빠져서 방학이 되면 10시간이 넘게 연습했던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지. 시대를 초월한 멋짐이라서가 아닌 거다.

내게 2000년 미국 내셔널, 2001년 세계대회의 충격이 있다면 지금 세대는 그 충격을 2010년대 어느 세계대회. 어느 아시아대회에서 받았을 것이다. 그러니 후세대가 요요를 더 잘하는 것도. 내가 여전히 어라운드 월드 계열의 궤적이 큰 기술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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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 이유로 요요씬에 대한 경험과 태도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요요실력을 늘리는 데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성격 좋은 얼리어답터 누나/형들이 리딩하는 동아리에서 요요를 시작했다. 큰 프로모션을 경험했지만 당시 환경 상 지금과 비교하면 요요에 대한 정보는 턱없이 부족했고 기술도 아직 많이 발달하지 않은 시기였다. 대회라는 것도 처음엔 잘 감이 오지 않았다. 전국대회는 2000년도나 되야 생겼으니까.


하지만 지금 세대는? 요요를 사는 건 너무나 쉽고, 기술 정보를 얻는 것도 너무 쉽다. 대회는 기본 옵션이다. 또래집단의 영향력은 예전보다 훨씬 크고, 눈 돌아갈만큼 빠른 유튜브,SNS 속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자신의 기술을 찍고, 올리고, 자랑하기도 쉽다. 취미는 더 고도화되고 더 매니악해졌다. 동아리는 철저히 실력중심으로 돌아간다. 다를 수 밖에 없지.


하지만 우리는 모두 다 함께 요요를 좋아하고, 더 잘하고 싶어한다. 이건 매우 큰 공통점이다. 나는 솔직히 내가 1020과 어느정도의 접점을 요요 덕분에 가지고 살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그리고 여전히 20년전의 영상을 보면서 다시 피가 끓을 정도로 나는 그 긴 시간을 요요를 좋아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좋아할 수 밖에 없겠지.


때문에 나는 이런 생각을 종종 한다. 요요를 하는 많은 친구들이 자신을 끓어오르게 했던 요요영상을 20년, 30년 후에 다시 봤을 때, 그 순간처럼 다시 기뻐하고 신기해하고,자극받는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고.

왜냐면 그건 정말 행복한 일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같이 하는 친구들이 그 행복을 오래 누리길 바라는 건 당연한 마음 아니겠는가? 물론 요요를 더 잘하기 위해서 연습을 해야 하고, 어쨌건 대회가 있으니 경쟁을 해야 하고, 요요랑 별개로 세상은 그지 같이 돌아가고, 살아가는 건 계속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그래도 이런 순간들과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씬이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면들이 계속해서 이어져야 하겠지. 노력해나가자. 연습하자.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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