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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May 03. 2020

규모가 만드는 퀄리티

 대기업의 기술력이란 정말....아마존 서핑하다 구한 98년도 반다이 스피너즈 헤비박스가 한달만에 도착. 일본에서 한창 요요붐이 일었을때 반다이에서 출시한 요요케이스 제품이다. 내가 막 요요를 시작했던 99년(중3때)에 왕십리 스피너 사람들이나 돈많은 동호인들이 가지고 있는 걸 침만 흘리면서 봤었는데 역시 이 맛에 어른을 하는 것이다.

 근데 어릴때 기억만 있어서 가물가물했는데, 실제 받아보니 제품 퀄리티가 감탄이 나올만큼 좋다. 제품의 설계도 훌륭하다. 왼쪽은 일반 요요케이스처럼 요요를 눕혀서 넣게 되어있고, 오른쪽은 요요를 세워서 넣을 수 있게 되어있다. (필통에 넣듯이) 그리고 중간 공간에 별도 케이스를 장착해서 여기에는 정비용품들을 따로 담을 수 있게 했다. 플라스틱 재질이라 잠금방식으로 개폐가 되서 여닫이도 매끄럽다.

역시 규모가 커지고 들어가는 비용이 달라지면 퀄리티가 달라진다는 걸 실감하게 만든 제품이다. 물론 지금 요요회사들이 이 정도 만들 역량이 없어서 이런 제품을 안내는 게 아니다. 기술은 오히려 더 좋아졌고 노하우도 많이 쌓였겠지만, 아무래도 수요의 문제가 클 테다.  


 이 정도까지 좋은 구성으로 만들려면 일단 플라스틱 제품이어야 한다. 그러면 금형을 만들어야 하니 생산비가 올라간다. 최소수량도 어마하게 올라간다. 아무리 고퀄이어도 지금 시장에서 소화할 수 있는 물량이 아닐 테다. 다만 요요백에 대한 수요는 항상 어느정도 있으니 금형보다 훨씬 싼 천 재질의 가방으로 만드는 것이 그나마 생산가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고, 재질 특성상 요요케이스 내의 디테일한 구성이나 항상 고질적인 문제가 되는 스펀지의 헐거움 등은 해결하기가 어려워진다. (내 생각에는 천 재질로 나온 가방 중에서는 YJ의 제품이 이런 문제를 가장 잘 해결했다.) 천 재질의 가방이 사실 일상에서 휴대하거나 사용하기는 더 좋지만, 앞으로 우리 인생에서 이 정도까지 잘 만들어서 대중적으로 판매하는 하드 케이스를 볼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드니 좀 아쉽기도 하다.


 좋아보이건 나빠보이건, 어쨌든 특정 제품이 출시가 가능했던 조건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사업자의 혁신적 마인드? 대승적 결단? 이런 요소로는 불가능하다.


 98-99년은 반다이 혼자서 주요 브랜드 요요 대부분을 라이센싱해서 팔았다. 우리가 지금 탑블레이드나 터닝메카드에서 보는 것과 같은 종류의 프로모션 방법이 요요에 다 동원됐던 시기다. 애니메이션, 코믹스, 전국 유통망에서의 상시 프로모션, 순회공연과 대회. 지금처럼 메이커가 많을 때도 아니고 규모가 있는 회사이니 붐 국면에서 사실상의 독점지위였을 테다. 내가 일본에 당시에 있던 것은 아니나(...) 한국에까지 그 여파가 미쳤던 것을 생각해보면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는 충분히 상상 가능하지 않은가.


 때문에 반다이 요요를 담고 사용하기 위한 부속품 수요도 충분했을 테고, 그냥 아예 프로모션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런 부속품을 다 고려하고 시작을 했을 것이다. 지금은 20년 전 그때보다 요요의 종류도 많아지고 기술은 고도화됐지만 시장 규모는 분명히 훨씬 작아져 있을텐데, 이런 고퀄 제품이 안나오는 게 당연하다. 하기사 98년 요요붐때 일본에서 더블룹 가능했던 동호인이 천 단위였다는 도시전설도 있으니.


 어쨌든 이렇게 만들어서 팔아도 장사가 된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나온 제품. 참고로 이 제품 아마존에서 80불 정도인데, 이게 당시의 정가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조금 더 뻥튀기가 됐을 테고 실제로는 60불 정도 (7만원 초) 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플라스틱 금형제품의 최소 발주 수량이 만 단위임을 고려했을 때, 1만개 발주 가정 시 7억 정도의 규모이다. 심지어 이 제품은 아직도 물량이 남아있는 하이퍼 레이더나 메인터넨스 오일과 다르게 시장에서 구하기가 어렵다. 거친 가정이긴 하지만 요요백으로만 7억을 팔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반다이는 자체공장이 있으니 훨씬 적을 수도 있다. 그래도 억 단위일텐데...지금 이 시장에서 그 규모가 실감이 잘 안난다. 이 정도 제품을 이 가격, 이 규모로 팔 수 있었다니 대단하지 않나? 마치 아키라 애니메이션에서 버블을 보듯, 98년 요요붐의 대단함을 엿볼 수 있는 제품. 역시 취미시장도 곳간 차야 인심 난다.


 그리고 요요붐 기간에 유년기를 보냈던 사람들의 몰입도와 공헌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일본도 마찬가지지만, 한국도 결국 동아리의 코어멤버들은 99년 요요붐. 2000년 중반 미르가온. 2010년대 블레이징 틴스 프로모션. 그리고 YJ 요요샵사업이 한창 잘 될때의 프로모션을 거친 멤버들인 경우가 많다. 그 외의 기간에 시작한 멤버들 중 오래 지속된 사람들을 찾기는 쉽지 않다. 내가 하는 취미가 재밌어야 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고 이 취미가 세상에서 관심받고 있다는 느낌과 동아리가 자신의 취미 과정을 케어해준다는 느낌. 그에 따라오는 적절한 성취감/승리감이 향후 취미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임은 틀림없다. 기업의 대규모 프로모션은 그런 고양감을 심어주는 매우 좋은 수단이기도 하고. 동아리의 자체 역량이라는 문제가 또 여기서 남게 되는데....생각해보니 할 얘기가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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