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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Jul 18. 2020

어쩌면 취미 하나를 잘 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닐까.

저 요요 진짜 잘해요-라고 말할 일이 종종 생긴다.

자존감이 그다지 높지 않은 내가 자신감 있는 ‘척’을 안하는 드문 순간이다. 진짜 자신 있으니까. 물론 요즘 선수들 앞에서는 절대 그런 이야기 안한다. 비웃는다. 1등 몇번 했지만 사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국제레벨하고는 항상 거리가 있으니까. 그래도 꽤 잘하는 건 맞다. 오래 하기도 했다. 이제 햇수로 22년이 됐다. 내 인생의 반 이상을 취미로 가지고 온 셈이다. 이 정도면 이제 취미라고 하기도 민망하다.

뭐가 그렇게 재밌을까? 사실 요요 생각 안하는 날이 더 드물다. 연습을 시작하면 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기술이 성공하면 너무나 즐겁다. 연습을 안하는 다른 시간 동안은 이번에 연습한 기술을 어떻게 해야 더 잘할까를 생각한다. 좀 템포가 빠르거나 느낌있는 음악을 들으면 이걸 대회에서 쓰면 어떨까 생각한다.

대회를 20년을 넘게 나갔는데도 내 순서가 오면 여전히 긴장이 풀리질 않고, 원하는 대로 결과가 안나오면 어른답지 못하게 속이 상한다. 요요를 돌리고 있으면 근심걱정이 정말 많이 사라진다. 굴곡도 있었지만 요요를 하는 내가 너무 좋다. 좀 바보같은 얘긴데. 내가 요요하는 영상은 찍어놓고 진짜 한 수십번은 본다. 자뻑....ㅎㅎㅎ

취미가 얼마나 사람의 인생을 많이 바꿔놓을 수 있는지에 대해 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다. 10대때는 이거 한다고 너무 말을 안들어서 부모님께 많이 혼났다. 몰래 하느라 온갖 술수를 다 발휘했다. 사실 지금도 그렇게 썩 달가워하지 않으신다. 다행히 졸업하기 전 취업을 해서 부모님과 요요를 둘러싼 작고 긴 갈등에서 최종 승자는 내가 되었는데 내 인생에서는 그게 꽤 큰 승리 경험 중 하나다.

중학생때는 일진한테 얻어맞고 와도 요요를 했고, 고등학생때는 수능 봐야 하는데도 요요를 했다. 그때는 쓸데없이 오지랖 부리며 상처주는 사람도 많았다. 학생이니까 하지마. 요요땜에 너는 인생 망했어...결국 내가 이겼지. 대학생때는 취업준비해야하는데 요요공연하러 다니고. 첫 직장의 개같음을 털어내고 내 시간을 지키기 위해 다시 연습하고 노력하고...지나고 나서 보니 정말 애 많이 썼네.

다만 이런 인생에 생기는 문제는....무언가를 열심히 하거나 잘 하는 기준이 요요가 됐다는 점이다. 겁이 많아서 절대 요요만 할거라고는 생각 안했고 항상 도망칠 구멍을 만들어 놓기 위해 수험생활도, 대학교 생활도, 취업준비도, 회사생활도 나름대로 애는 써왔다. 근데 요요 하는 만큼 몰입해서 했나? 하면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가 꽤 오랜 시간 내 마음속에 남았다.

그 작은 취미 하나를 잘하면 뭐하나. 정작 내가 구성원으로서 해야 하는 일은 요요하듯 열과 성을 다해서 해본 경험이 없는데. 이건 어쩌면 내 도피가 아닌가...그런 생각을 지금도 많이 한다. 워라벨이라고 할때. 내 사적인 삶은 어떤 면에서는 균형을 갖췄거늘 왜 내 공적 삶은 그렇지 못할까. 이런 생각에 휩싸일 때가 많았다. 요요를 하는 나 자신은 그럭저럭 맘에 드는데. 다른 이동훈은 왜 이리도 좋아하기 힘든가.

이런 내 컴플렉스가 쉽게 사라지진 않겠으나 그나마 요즘은 좀 더 총체적인 관점에서 생각을 해보게 됐다. 요요랑 다른 영역이 대결하는 게 아니라. 결국 요요를 꾸준히 즐기기 위해서 그 모든 걸 해왔던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물론 이건 모든 인생을 다 올인하기에는 지나치게 작고 한심한 세계다. 하지만 내 다른 삶을 잘 꾸리면서 추구할만한 가치는  있을지도. 그런 생각을 조금씩 더 하기로 했다. 내 인생이 뭐 그리 대단한 인생도 아니니 말이다.

물론 지난 내 시간에 대한 합리화일수도 있다. 그런들 이제 와서 어쩔텐가? 앞으로도 아마 큰 변화가 없는 한 내게 주어진 얼마 안되는 에너지를 활용해 가장 열과 성을 다할 일은 요요다. 그래서 나이 드는 게 좀 무섭기도 하다. 몸이 쇠하면 결국 더 하지 못하게 될 날이 올까봐.

그때를 대비해서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 놓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20년동안 취미 하나를 깊게 파보고 깨달은 사실이 있다. 취미의 지극한 즐거움이란 목적의식을 통해서는 결코 오지 않는다. 나중을 대비해서, 이걸로 부업을 하려고, 무엇이 되기 위해서....그런 실용적인 생각으로는 결코 취미가 숨긴 진짜 즐거움을 맛 볼수 없다. 사사건건 쓸모만 요구하는 세상에서 무용한 짓을 하는 사치스러움이 취미가 가진 진실한 행복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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