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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May 10. 2020

노인에게 불행하면 모두에게 불행하다

익산 정점마을 환경재난.

이번주 시사인 타이틀 기사는 익산 정점마을 환경재난 이야기. 이 사건의 개요를 이야기하자면, 전북 익산 장점마을 인근에 2001년 비료공장이 들어선 뒤 마을에서 22명의 암환자가 발생했고, 암 유형별로 최대 14.5배까지 발병률이 높아졌다.

당연히 사람들도 많이 죽었다. 17명의 주민이 세상을 떠났다. 공장에서의 악취가 말도 못하게 심했고, 병이 계속 확산되는 추세였던데다가 농작물과 하수에서의 물고기 폐사 등의 문제까지 등장해 주민들은 공장과 지자체에 계속 항의하고 나름의 자구책을 시도했다.

 그러나 공장은 "냄새가 다 호불호가 있지 어떻게 다 맞춰주냐"라는 식으로 눙치고, 돈을 뿌리고, 뻗댔다. 지자체는 대충 살펴만 보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드디어 2019년에 비료공장과 환경재난의 연관성이 인정된 것이다. 이 비극에서 최대의 블랙코메디가 하나 있는데, 공장은 결국 문을 닫았고, 사장은 폐암으로 사망했다는 사실.

 시사인 기사는 정점마을 주민들의 인터뷰를 다루고 있다. 주민들의 육성을 생생히 다루고 있는 이번 호 기사를 꼭 한번씩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다. 이 사건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맘이 부끄러웠지만, 쓰린 속을 달래며 인터뷰들을 읽다 보니 얼마전 읽은 <임계장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노인들이 모인 농촌의 환경재난과 도시의 노인 임시 계약직 노인장. 두 사례가 주는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노인의 고통에 대한 것이다. 노인의 고통은 세상도, 본인도 늙어서 그런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고통을 호소하는 조정진 선생님에게 관리자들은 "노인네가 얼마나 더 살려고" 라고 하거나 "노인도 추위를 탑니까?"라고 쏘아붙인다. 정점마을 주민 중 2019년 1월에 사망한 최옥엽씨는 공장 때문에 아픈게 아니라 나이 먹어서 아픈가 싶었다고 했다. 아마 많은 주민들이 그랬을 거라고 추측해본다.

 노인도 인간이다. 나이듦과 죽음에 대한 책들을 꾸준히 챙겨서 읽는 편인데 그 책들이 노인의 삶에 대해 공통적으로 말하는 점이 있다. 노인의 고통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늙으니까 당연히 아픈 것,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기능의 저하와 명백히 더 건강할 수 있는데 외부 요인으로 아픈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한국사회는 노인도, 비노인도 늙으면 아픈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게 너무 끔찍하다. 아픈 게 당연한 존재가 어디에 있는가? 생노병사의 진리는 자신의 삶을 반추할때 쓰는 개념이지 다른 존재에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며 고통이라고 생각하며 대해야 한다.

 나는 사회의 미래가 아이들에게 있다는 말은 반만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시골에 살건 도시에 살건, 오래된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외출한 백발의 신사건, 태극기를 들고 종로에 나가건, 지하철 속의 시끄러운 노인이건...노인은 사회에서 제일 약하고, 환대받지 못하는 존재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노인을 위한 나라'라는 뜻은, 이제 평균 80세 이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긴 인생 동안 인간 취급을 받을 수 있는 시기가 고작 10년에서 20년 정도란 이야기다.  

 그런 사회에서 자란 아이들은 무엇이 됐건 결국 또 나이듦을 혐오하게 된다. 그런 사회에서 말하는 노년의 행복이니, 실버세대니 하는 개념들은  '젊음을 유지하는' 노인 말고는 유의미한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우리 세대가 노인이 되면 다를까? 지금의 노인보다 더 교육수준이 높고 더 많은 부를 누렸으니까? 나는 지극히 부정적이다.

 청년이 어떻고 무엇이 어떻고...뭐 하나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없다지만, 노인문제의 해결 - 끝없는 빈곤, 건강의 위협, 자살률, 사회로부터의 격리, 노동권의 박탈- 없이 아무리 취업이 잘 되고 아이가 뛰놀기 좋아도 우리의 삶은 결국 비참하고 무섭고 두려운 무엇으로 끝날 거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말년과 죽음을 필요 이상의 공포 속에서 맞이해야 한다면 사람들은 결국 언젠가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젊음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개인윤리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노인을 존중하지 않는 자가 무엇을 존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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