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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Jul 19. 2020

글 쓰는 게 취미인 사람.

글 쓰는 건 즐겁고 무용한 일이다.

즐겁다니...마감에 쫒기며 글을 업으로 하는 친구들에게 가혹한 이야기지만 취미기 때문에 그렇다. 요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중요한 취미라고 한다면 글쓰기를 빼놓을 수 없다. 주말에 이충걸 씨의 경향신문 칼럼을 보다가 깨달았다. 잘 쓰여진 에세이나 미문은 사실 엄청난 쾌락을 가져다주는데, 오랜만에 그의 칼럼을 보면서 그런 맛을 봤다(옛날 글보다 요즘의 글이 더 좋다)

그런 글을 보면 나도 절로 글을 더 잘 쓰고 싶어진다. 그리고 요요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이 취미의 좋은 점은 더 나아질 여지가 무궁무진하다는 거다. 물론 요요랑 차이도 있다. 요요는 내가 챔피언을 해봤기 때문에 초점이 적더라도 어느 정도는 ‘경쟁’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글쓰기는 애시당초 내가 업으로 할 영역이 아니란 걸 알기에 더 자기만족인, 혹은 평가 범위를 주변사람 정도로 좁힌 레벨에서 영위 가능한 취미다. 어쨌든 둘 다 내가 어제보다 오늘 더 잘 하는 매력 넘치는 취미다.

사실 글쓰기를 10대부터 체계 있게 해온 건 아니다. 고1때부터 블로그를 시작해서 주절주절 글을 많이 써왔지만 제대로 써보자 하고 기록하기 시작한 건 정작 공익근무 할 때다. 그때부터 읽고 본 것들을 기록하고 내 생각을 남겨왔다. 여기저기 기록이 흩어져 전부 정리를 해봐야 하지만 다 합치면 7-800편, 어쩌면 1천편 가까이 될 테다. 물론 다 의미 있는 글은 아니다.

그렇지만 하루를 보내다가 문득 든 생각을 짧게 메모해놓고 나중에 그걸 두문장 네문장 다섯문단으로 늘려나갈 때 드는 희열은 꽤 크다. 그렇게 글을 마무리 했을 때 나온 결과물이 그럭저럭 말이 되는 수준이라면 그래도 아직은 내가 생각하는 법이나 지성을 잃지는 않았구나 하고 안도한다. 대학생 시절에 그렇게 문화생활에 집착하고 홍대를 돌아다녔던 이유는 어쩌면 글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글쓰기를 취미로 가진 자로서 내 가장 큰 장점 (어쩌면 단점)은 정말 시도때도 없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쓴다는 점이다. 남에게 보여주는 일을 그렇게까지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수영을 배워야 하는 사람이 물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하다. 체계있게 글쓰기 훈련을 받거나 연습해 본 경험이 많이 없다. 퇴고를 잘 하지 않는다. 아마 sns시대에 글쓰는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어제 이충걸 칼럼을 보고 한껏 좋아진 기분을 바탕으로 책꽂이에 쳐박아놨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꺼내서 후루룩 읽었다. 이 책에 나온 퇴고 기준만 적용해도 내 글을 훨씬 좋아질 거란 생각을 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글은 문장 문제가 아니라 소스와 솔직함 문제이고 내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개선되고 경험이 고양되어야만 내가 쓰는 글 또한 그렇게 될테다.

그렇다면 글쓰기가 무용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글쓰기도 사실 취미라고 말하기에는 어두침침한 구석이 있다. 아무런 기대도 실용 목적도 없는 취미로서 글쓰기를 왜 하는가. 이건 그냥 끊임없이 나를 객관화하고 공격하는 의미가 아닐까. 혹은 모든 사건에 몰입하지 못하고 오직 글감이라는 수단으로서만 사건을 대하게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심지어 나는 그래야 하는 직업적 목표도 없는데.

위에서 언급한 그 칼럼은 독서가 주제였는데 “가끔 책을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무슨 가치가 있는지 의심한다. 아무리 책을 파고 들어도 지혜의 입자 하나 매만질 수 없고, 밑줄을 그었던 어떤 문장도 우물에 빠진 나를 건지러 오지 않았다. 분명한 건 읽는 행위가 붕괴된 빅뱅 후에는 무엇으로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라는 문장이 내 마음을 때렸다. 글을 쓰기에 더 나은 나를 만든다는 자기 위로는 가능하겠지만 그렇게 더 나아진 내가 세상에서 잘 살아가기 위한 나라는 보장은 없다. 내가 쌓아왔던 글쓰기 습관 어느 하나도 ‘우물에 빠진 나를 건지러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어가 다수의 문단이 되는 일은 창의력 없는 내게는 정말 몇 안되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조의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음침하거나 쓸모없거나 상관없이 계속 또 이렇게 주절주절 글을 쓰며 낙을 삼을 수 밖에 없겠다. 이 순간이 주는 즐거움은 정말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즐거움을 어쨌거나 저쨌거나 더 많은 이가 느껴봤으면 좋겠다. 글을 잘 쓰면 뭘 더 잘할 수 있다느니...스펙이라느니...이런 주장은 잠시 접어놓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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