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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Aug 05. 2020

엄마의 아이폰

최성은 여사에게 전자기기의 사용을 가르쳐주는 게 나에게는 꽤 큰 낙이다.

핸드폰을 바꿀때마다 직접 세팅해주는 것. 이런저런 어플을 깔고 사용법을 알려드리는 것. 넷플릭스를 크롬캐스트로 연결해주고 인터넷 뱅킹을 등록하고 카카오미니를 설치하기 위해 와이파이 증폭기를 놓고...이런 게 다 내 낙이다. 원래 남에게 이런 저런 설명들을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엄마를 상대로 하는 건 도움 여부가 명확해서 더 그렇겠지.

이번에는 5년째 쓰는 넥서스가 한계에 도달해 내친 김에 아이폰으로 바꿔드렸다. 훨씬 안정적이고 빠르고. 내가 쓰는 폰이니까 전화로 엄마가 뭘 물어볼때 알려주기도 쉬워진 셈이다. 새 폰을 세팅해서 드리니 엄마는 화면이 선명해서 좋다며 유튜브로 나에게 트로트 프로그램 몇개를 보여주고는(...)누워서 이런저런 것들을 보다 잠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문자내역과 사진과 인터넷뱅킹 공인인증서는 옮기지 못했다.

넥서스가 고장이 날대로 나서 느려진 탓이다. 데이터를 옮기려다가 홧병이 날 뻔했는데 엄마는 ‘내가 일하는 사람도 아닌데 그냥 쓰지 뭐’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비밀번호도 다 남편 아니면 아들 관련 정보라 이시대 기혼여성의 슬픈 현실이구만...이라고 투덜거리니 ‘내 생일로 해놓으면 비밀번호 의미가 없잖아~’라고 천연덕스레 말한다.

같이 살면서 그때그때 내가 생활의 사소한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말엔 같이 좋은 것도 보고 맛난 것도 먹고. 그런 아쉬움을 그냥 이런 식으로 몰아서 푸는 것일수도 있다. 그러나 가족은 원래 또 멀어져야 애틋한 법이라. 아마 우리 세식구가 같이 사는 어느 평행우주는 의절이라는 엔딩이 기다릴 수도 있겠지.

적어도 지금 이 우주에서는. 엄마의 새 전자기기가 잘 돌아가고. 엄마가 넷플릭스에서 뭐가 재밌다고 말하고 왓챠는 안돌아간다고 하고. 카카오미니로 날씨를 물어보고 엄마가 카톡을 능숙하게 잘 쓰는 것. 유튜브를 깜빡하고 안 깔았더니 ‘제일 중요한 걸 빼먹었다’고 말하는 건 나에게 매우 중요한 행복의 지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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