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은 여사에게 전자기기의 사용을 가르쳐주는 게 나에게는 꽤 큰 낙이다.
핸드폰을 바꿀때마다 직접 세팅해주는 것. 이런저런 어플을 깔고 사용법을 알려드리는 것. 넷플릭스를 크롬캐스트로 연결해주고 인터넷 뱅킹을 등록하고 카카오미니를 설치하기 위해 와이파이 증폭기를 놓고...이런 게 다 내 낙이다. 원래 남에게 이런 저런 설명들을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엄마를 상대로 하는 건 도움 여부가 명확해서 더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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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5년째 쓰는 넥서스가 한계에 도달해 내친 김에 아이폰으로 바꿔드렸다. 훨씬 안정적이고 빠르고. 내가 쓰는 폰이니까 전화로 엄마가 뭘 물어볼때 알려주기도 쉬워진 셈이다. 새 폰을 세팅해서 드리니 엄마는 화면이 선명해서 좋다며 유튜브로 나에게 트로트 프로그램 몇개를 보여주고는(...)누워서 이런저런 것들을 보다 잠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문자내역과 사진과 인터넷뱅킹 공인인증서는 옮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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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서스가 고장이 날대로 나서 느려진 탓이다. 데이터를 옮기려다가 홧병이 날 뻔했는데 엄마는 ‘내가 일하는 사람도 아닌데 그냥 쓰지 뭐’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비밀번호도 다 남편 아니면 아들 관련 정보라 이시대 기혼여성의 슬픈 현실이구만...이라고 투덜거리니 ‘내 생일로 해놓으면 비밀번호 의미가 없잖아~’라고 천연덕스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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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살면서 그때그때 내가 생활의 사소한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말엔 같이 좋은 것도 보고 맛난 것도 먹고. 그런 아쉬움을 그냥 이런 식으로 몰아서 푸는 것일수도 있다. 그러나 가족은 원래 또 멀어져야 애틋한 법이라. 아마 우리 세식구가 같이 사는 어느 평행우주는 의절이라는 엔딩이 기다릴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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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지금 이 우주에서는. 엄마의 새 전자기기가 잘 돌아가고. 엄마가 넷플릭스에서 뭐가 재밌다고 말하고 왓챠는 안돌아간다고 하고. 카카오미니로 날씨를 물어보고 엄마가 카톡을 능숙하게 잘 쓰는 것. 유튜브를 깜빡하고 안 깔았더니 ‘제일 중요한 걸 빼먹었다’고 말하는 건 나에게 매우 중요한 행복의 지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