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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Aug 05. 2020

이름을 불러줘야 의미가 생기지.

새마을 운동 기사를 읽고


 새마을운동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흥미로운 기사. 이 운동과 박정희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보게 된 순간은 2017년 작 <미스 프레지던트>를 보고 나서였다. 박정희와 박근혜에 대한 무한 충성심을 가진 이들을 다루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 속에는 청년 시절 새마을 운동을 통해 자신의 삶에 의미를 찾은 어르신 한분이 나왔는데 그게 참 인상적이었다. 


 그 당시 내가 이해하기로는 박정희 시절 이전에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자신과 마을이 새마을 운동을 통해 '개선'되고 '미래'를 꿈꿀수 있게 되고 그리고 새마을 운동 지도자로 의미있는 '호명'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 어르신의 삶에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그 영화를 보고 좀 더 그 세대의 마음을 더 생각해보게 되었지.


 비슷한 맥락에서 또 하나 든 생각은 김민하 큰스승이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였나 아니면 개인 블로그 글이었나...덤프트럭 운전사들의 노조인 '덤프연대'에서의 후일담에 대해 쓴 글의 내용이다. 어느날 인생에 워낙 문제가 산적한 옛 노조원 한분을 만났는데 그 분은 노조 시절이 거의 유일하게 대의에 따라 산 (의미있게 산) 시절로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닌가..뭐 그런 얘기였는데. 


 두가지 사례를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람은 어쨌든 시대의 호명과 인생의 의미가 중요하다는 거다. 옛날엔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어...그런건 없어. 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옛날에는 의미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에 가까웠던거지.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자기 스스로를 호명하기는 어렵다. 그건 내가 살아가는 시대와 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에게 던져지는 것이기 땜시. 우리는 지나간 역사의 영향과 미래에 대한 고민 속에 살고 우리를 결정하는 수많은 힘들은 나의 의지나 통제를 벗어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실 우리 스스로를 정의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간혹 운이 좋은 이들이나 능력이 송곳같이 뚫고 나오는 이들은 시대가 그들에게 명예로운 이름을 주거나 (새마을 운동 지도자 / 민주화 세대) 스스로 불리고 싶은 이름을 널리 알리기도 한다 (마술사 이은결)  그래서 나는 제대로 된 호명을 붙여주고 사람들을 묶어주고 공통의 정체성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정치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국민 시민 인민...그런거 말고. 하물며 밀레니얼이니 MZ니..이런 것은 그냥 마케팅을 위한 기업의 용어일 뿐이다. 


 그런데 시절이 하수상하면 그런 것에만 의존할 수는 없으니...스스로 의미를 찾는 일을 해나가는 수 밖에 없다. 대의는 잘 모르겠더라도 적어도 뭔가 내 삶이 나아지는 맛이 있다던가, 성장한다던가, 아니면 무언가 이뤄내거나 지킨다던가, 달성한다던가...그런 의미에서, 나는 참 쓸데없는 생각이 많은 편인데 호명의 문제에는 관심을 두면서 정작 내 삶의 의미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옛날에 사람들은 이름을 세개를 짓는다고 했던가? 명(名)은 부모가 주는 것이고 자(字)는 공적 이름이고 호(號)는 스스로 붙이는 이름이라면(정확한 정보는 아님) 명이나 자는 신경쓰면서 호는 내팽겨쳐놓은 셈이다. 내 호는 뭐가 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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