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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Aug 05. 2020

힙스터에겐 인내심과 눈치가 없다

 미국에서 흑인 탄압에 대한 항의 시위가 격화됐던 시기에, 정확한 시작은 알 수 없지만 LA 폭동 당시의 한인 사회 자경단의 사진이 밈으로 쓰였다. 이 사진들이 백인들을 통해 '우리도 이렇게 흑인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식으로 소비되고(휴...) 그게 또 한국으로 흘러들어와서 '힙하다'고 소소한 화제를 끌었다.



 물론 나도 처음엔 '오~이 짤은 뭐지? 간지가 엄청나군!' 했다가 이런저런 맥락들을 찾아보고서야 이 사진들에 깔린 맥락들을 알게 됐다. 이 사진들이 인종차별적으로 소비되는 맥락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할테니 굳이 또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 하고, 오히려 나는 '힙하다'라는 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다. 요즘은 힙하다는 말도 잘 안쓰는 추세인 듯 하지만. 



 예전에 내 나름대로 힙스터에 대해서 내린 정의가 있다. 노력 없이 소비로 획득 가능한 멋이나 상징에 집착하는 이들이 바로 힙스터다. 시간을 들여서 뭔가를 숙달하고, 재정의하고, 이런 행위들은 힙스터의 주의를 끌지 못한다. 지금 즉시 돈을 지불하여 획득할 수 있는 아이콘들만이 힙스터의 주의를 끌 수 있다.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에게는 힙하다고 하지 않지만, 요즘 유행하는 뉴트로를 착실히 소화해낸 사람은 힙하다. 시집을 사서 표지를 찍어 올리는 건 힙하지만, 그걸 읽고 되새김질 해보고 알리는 것은 힙하지 않다. 롱보드를 구매한 사람은 힙하다고 하지만 롱보드를 계속 연습하는 사람은 힙하다고 하지 않는 것에서 힙의 본질이 드러난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어떤 사진들이나 글들이 '힙하다'고 소모되는 일들 또한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이미지나 콘텐츠가 나온 맥락은 전혀 상관없이 그냥 보는 즉시 전달되는 느낌만을 기준으로 힙/언힙이 결정되는 사고방식. 


 이 사진들도 그렇다. 이국적이면서도 친근한 한글간판이 깔린 LA를 배경으로 지금 기준에서 '뉴트로'한 패션의 남성들이 옥상에서 능숙하게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은 얼마나 힙한가? 포크레인 뒤에서 권총 든 한국교포....이건 연출 하라고 해도 못하겠네. 그치만 이 사건의 맥락에 미국 사회의 뿌리깊은 인종차별 문제와, 백인 외 인종갈등에 대해 무책임하게 군 백인들의 책임과. 복잡한 두순자 사건과 한인사회의 인종차별적 인식과...이런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가 어렵다. 어려운 것이 당연한 환경에 우리가 살고 있기도 하고. 그러나 알아야 한다.




 힙이니 힙스터니 하는 것은 정말 한없이 가볍고, 몰역사적일 수밖에 없고, 구조맹일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자본과 친화적이고. 가볍고 또 맥락없기에 많은 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일테다. 누군가가 힙스터를 화전민이라고 칭했던 것은 정말 엄청난 통찰력이 아닐 수 없지.


 때문에 힙이라는 것의 본질적인 발상들은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내 눈에는 미투 국면에서 미투를 가지고 개그 짤을 만들고, 코로나 시국에서 '확찐자'를 가지고 광고짤을 만드는 눈치리스한 인간들과 근본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기도 하고....뭐 사실 그게 또 돈 되는 것의 속성 아니겠는가? 어쨌든 요지는, 힙하다고 할때는 우리가 한번 생각을 좀 더 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 센스니 미감이니..그런 것들을 벗어나서 한번 생각해볼 문제들이 있다. 또 사실 진정한 미감이란 그런 식으로 형성되지도 않는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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