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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Aug 05. 2020

화려하다고 막장이 아닌가

하이에나

 <하이에나>를 뒤늦게 조금씩 보고 10화까지 봤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세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라는 골때리는 책의 제목. 두번째는 이 작가가 언젠가 막장드라마를 쓰시게 될 것 같다는 느낌. 물론 내가 볼때 이미 막장드라마지만. 마지막으로 저기에 박신양(조달호) 투입하고 싶다는 생각...


 이런 찝찝함의 절정은 10화에서 재벌 4세들 학폭사건을 다루는 주인공들의 태도였는데 나는 여기서 더 이상 볼 힘을 잃어버렸다. 윤희재 (주지훈)나 정금자(김혜수)는 시종일관 아무런 윤리적 판단도 하지 않는다. 주어지면 열심히 해내고, 불편한 질문에 대해서는 사소한 문제라고 일축한다. 물론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윤희재는 타고난 금수저고 판단의 기준이 애시당초 그런 인간이며, 정금자는 가난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알고 개인의 트라우마가 강한 사람이니까.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그런 흐름을 즐거운 마음으로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물론 이후에 극이 전개되면서 다른 것들이 펼쳐질 수도 있겠지만 10회나 쌓인 캐릭터가 그렇게 바뀔리는 없다. 더 나가봤자 송필중(이경영) 나쁜놈이고 뭐 그정도겠지...보는 내내 나는 <리갈하이>나 <배터 콜 사울>을 생각했는데, <리갈하이>는 철저히 이해타산적인 주인공인 코미카도에 대비되는 대척점, 마유즈미가 존재하고, 코미카도조차도 사실은 나름의 명확한 윤리를 가지고 있다. <배터 콜 사울>의 세계에서는 뭐...말할 것도 없지요. <브레이킹 배드>의 결론을 아는 시점에서 <배터 콜 사울>내에서 등장인물들이 겪는 희노애락이 어떤 의미가 되는지 보는 이들은 너무나 잘 알 수밖에. 


 그런데 <하이에나>에는 균형을 잡아주는 대척의 캐릭터도, 인과응보도 존재하지 않는다. 쓰레기 같은 재벌 3세 4세는 계속해서 그렇게 살고 힘없는 사람은 합의금 받고 조용히 살며 정금자와 윤희재는 결국 행복하게 살겠지.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좋은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냥 캐릭터들이 입체적이고, 소재를 신선하게 다루고, 그러면 그냥 좋은 드라마가 되는 것일까? 기존 구습과 우리가 지양해야하는 것들을 화려하고 멋있게 담아내면 트렌디한 드라마가 되는 것인가? 클리셰에서 성별만 바뀌고 여성이 악인이 되면 좋은 것인가? 재밌고 통쾌하지만 그래서 남는 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는 드라마도 참 오랜만이다.

 물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모두가 다 뭔가를 남기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겠지. 작가가 그냥 철저히 묘사의 입장에서 이 드라마를 쓴 걸수도 있다. 그러나 내 개인적 기준에서는 그저 묘사만 할 것이라면 이야기를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스토브리그> <동백꽃 필 무렵> 등과 같은 재밌고 좋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던 시기라서 더 비교가 되는 지도. 하긴 막장드라마에 무언가를 왈가왈부 하는 것이 바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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