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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Nov 01. 2020

온라인 시대의 예언서

영화 <접속>

영화 <접속>을 이제서야 봤다. 장항준-송은이의 시네마운틴에 소개된 걸 듣고 맘이 동한 게 계기였는데 보고 나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당시에도 이 시나리오를 두고 전개가 너무 심심하다, 로맨스 공식이 전혀 없다는 걱정이 많았고, 캐스팅 대상이었던 배우들은 감이 잘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을, 투자자 대상 시사회 후에는 투자금 환불 요청까지 있었다고 한다.


 보고 나니 그 말들이 이해가 된다. 영화가 너무 세련됐다. pc통신이 활발하던 90년대 후반의 시대를 정확히 잡아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이런 것들은 제작단계에서는 외면당하기 마련이다. 



 영화 전반이 그 시절의 채팅방에 흐르던 감정들을 매우 잘 반영하고 있다. 늦은 밤의 PC화면, 쪽지를 받을때의 미묘한 기분, 상대를 잘 모른다는 점에서 오는 안도감, 그리고 채팅만 하던 상대를 실제로 볼려고 기다릴 때의 그 울렁거림과 미묘함과 설렘. 


<접속>은 이 감정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 97년의 20대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겠지. 여기에 더해서 90년대니까 가능했던 어떤 설정들. 쿨의 노래 같은 중구난방의 연애관계에 대한 동경. 마음 먹으면 떠날 수 있다는 구질구질함이 1도 없는 그 깔끔함 같은 것들도 새삼 와닿는다. 


 나는 어떻게 아냐고? 일단 요요를 하이텔에서 시작했으니까그리고 중학생 때 하이텔 채팅방에서 삼국지 퀴즈도 하던 기억. 어떤 누나와 알콩달콩 대화하던 기억. 나중에는 펜팔 소모임에서 편지 주고받다가 인생 첫 연애까지 했던 기억(...). 많은 친구들을 하이텔 채팅방에서 사귀었던 기억이 있어서 비록 당시 성인은 아니었지만 그 감정선을 잘 안다. 


 그때도 지금 있는 문제들 - 성희롱,음란채팅,악플,-은 존재했겠고, 내가 남성이기 때문에 겪지 않았던 수많은 문제들이 있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 하듯 PC통신의 분위기는 상당히 진중한 것이었고, 예민했던 사춘기 시절 인생 첫 온라인 경험을 그런 분위기에서 할 수 있었다는 건 내게 참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면, 받아주고, 얘기를 나눠준다. 고등학생 시절 인터넷 문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그 진중함은 끝났다는 생각을 당시에도 어렴풋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생각 -그때 존재하던 진중함은 끝났다-는 것도 어쩌면 함정일지 모르지. <접속>을 대했던 당대 영화인들과 투자자들의 반응이 보여주듯 pc통신 문화는 당시의 기성세대에게 불가해였고 훨씬 덜 진지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지금 내가 틱톡이나 페메, 페탐의 문화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고, pc통신 문화가 나에게 있어 설명 가능한 게 아니라 그저 감정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진지함이나 낭만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온라인에서도 분명 사람들은 관계의 설렘이나 진지함, 혹은 연결의 가능성을 찾고 있다. 사람은 언제나 외롭고, 더 외로워졌고 상대의 마음에 접속하고 싶은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꼭 97년에만 공감 가능한 이야기로 남진 않게 된다. 오히려 곧 전면화될 온라인 시대에 느낄 외로움과 접속의 기쁨을 제대로 다룬 예언적인 영화일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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