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즈 갬빗
1. 넷플릭스 #퀸즈갬빗. 완벽한 왕도물 (이 극에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지만, 소년물) 드라마. 너무나 즐겁게 봤다. 재능 있는 주인공. 동료와의 갈등과 화합.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최강의 적. 성장을 통해 그 적을 물리치는 과정. 이런 이야기는 언제 봐도 너무 즐겁다.
2. 소련의 존재감이 대단하다. 실제로 찾아보니 러시아는 전통의 체스강국으로 그랜드마스터 수도 미국하고 비교가 안될 정도(200명 이상 보유, 미국은 80명대) 극 중에서는 소련은 팀으로 싸운다고 하지만, 세계관 최강자 보르고프가 위엄 쩔게 나와 팀이고 뭐고 생각이 안난다.
3. 보면서 나 자신의 썩어빠진 마인드를 되새기게 되었다. 저 캐릭터 싸한데! 아니네...싸한데! 아니네...의 연발. 추잡한 인간군상이나 묘사 없이도 흡입력 있게 풀어나갈 수 있다는 좋은 예시가 되지 않을까. 과거의 사연과 상처는 딱 필요한만큼만 주어지고 과도하게 붙잡지 않는다. 체스라는 스포츠의 특성 때문이겠지만 성장의 방법으로 공부와 대화가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도 흥미롭다.
4. 안야 테일러조이가 아니었으면 이 드라마가 이렇게까지 멋졌을까? 승부에 돌진하는 하먼의 모습도 매력적인데, 극이 하먼의 처량한 과거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서 더 좋았다. 나는 하먼이 결국 체스에 빠진 게 고아여서(보르고프)도 아니고 통제가능해서도 아니고 아름답기 때문(하먼 자신의 코멘트) 라고 생각했다. <머니볼>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이래서 야구를 놓을 수 없다니까 라고 했던.
5. 샤이벌과 발틱이 참 맘에 많이 남는다. 자신의 소중한 취미가 기연이 되어 천재를 세상에 내놓게 된 아저씨. 평생을 아마 맘 속으로 그 사실을 자랑하며 되새겼겠지. 지하실 씬에서 나도 너무 마음이 찡했네. 발틱이 체스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을때는 정말 많은 감정이 몰아쳤다.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렇지 않았던, 그래서 적당히 하는 걸로 만족했던 것들이 생각났다. 심지어 요요마저도. 그런 맥락에서 러시안 소년에게 ‘세계챔피언이 된 다음은?’이라고 묻는 하먼이 마음 아팠다. 누구나 천재가 아니더라도 나름의 전성기가 있고 그것이 지나간 뒤에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을까. 샤이벌처럼 살아가는 것도 발틱처럼 사는 것도 쉽지는 않은데. 큰일이다.
6. 체스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