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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Aug 05. 2020

뭐든지 다 되는 세상이 제일 위험해

  이 사건을 보며 모 유명 의사 작가의 영향을 생각해 볼 수 밖에 없다. 내가 요 몇년간 가장 많이 바뀐 생각이 있다면, 악용 가능성이 있는 일들 혹은 입장을 뒤집었을 때 상대편도 정의의 이름으로 행할 수 있는 일들은 그냥 이유 불문하고 애시당초 불가능의 영역으로 남겨놓는 게 좋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문자폭탄이나 상대방의 정치적 입장을 비웃기 등이 있겠지...


 암묵적으로 지켜지던 룰을 깨고, 그것이 창작의 소재가 됨으로써 가져다주는 기회와 자원을 보게 되면, 그 다음은 반드시 비슷한, 더 극단적인 사례가 온다. 악용 가능성에 대한 시나리오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100% 반드시 발생한다. 뭐든지 처음이 힘들다. 그 다음부터는 막을 수가 없다. 공익이라는 것도 10개중에 9은 허상인 경우가 많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공익을 이야기하는 자들이 사람들을 속인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도, 우리도 이 복잡한 세상에서 지금의 공익이 이후의 혼란이 되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그리고 공익에의 헌신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돈이나 명예로 치환된다. 내가 보기엔 그건 개개인이 사리사욕 여부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 


우리는 시장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고, 시장은 새로운 것, 그래서 관심과 돈을 끌만한 것을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그 과정은 악의나 부정부패 이런 거랑은 상관없는 그냥 지극히 시장으로서는 당연한 과정이다. 


 때문에 공익을 실현하고자 하는 이들도 시장을 거치지 않고서는 그 공익을 최소한, 단기적으로 달성할 방법이 없다. 요 근래 한탄을 자아냈던 일군의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왜 그렇게 망빙타령과 이재용 타령을 하며 매우 소비자 운동스러운 커뮤니케이션들을 하겠는가?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이 원리를 가장 잘 꿰뚫고 있는지도 모르지. 요 근래 주목받기 시작한 의사 두 명이 모두 응급의학과 의사라는 게 나는 그냥 우연처럼만은 보이지 않는다. 병원 내에서 가장 자극적이고, 그러면서도 가장 잘 드러나지 않았던 주제라는 점에서 시장이 정말 만족할만한 주제 아닌가. 물론 그들이 부각됨으로써 실현된 공익이 있겠지만, 5년 정도의 시간을 놓고 봤을때, 과연 이 모든것이 공익으로 끝날까. 그렇다면 생명, 사생활, 개인정보, 윤리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최대한 보수적인 판단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갈수록 이렇게 지킬건 지키자는 보수주의자가 되어간다...


 이게 전문직의 영역만 그럴까? 다른 영역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나는 요즘 엄청 자주 한다. 전문직은 보수적인 세계니까 이제 겪기 시작한 것일 뿐이다. 기발하니까 멋지니까 힙하니까...그렇게 알음알음 깨온 것들이 많겠지. 예를 들면 그냥 불과 10년전에 반려동물이 귀여우니까, 프로그램 보면서 사람들이 행복해 할 거니까. 그래서 출연시켰고, 같은 종이 대량으로 유기되는 그 과정 같이 말이다. 그렇게 해 놓고 '나는 그저 내 일에 최선을 다 했을 뿐 악용한 사람들이 잘못이다'라고 할 수 있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지금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관심있어 하는 활동들. 편견으로 밝혀진 것들을 확대재생산하는 활동들을 막고, 지탄하는 건 상대적으로 쉬웠다는 걸 몇년 내로 깨닫게 될 지 모른다. (그 활동들이 필요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새로운 세상'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 끼칠 악영향을 다면적으로 고려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진중권이 보수를 비웃던 통쾌함이 일베의 유머글로 나타날때, 페미니즘 웨이브의 일부가 TERF로 나타날 때의 그 뜨악함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런데 그런 면에서 유능한 사람, 세력이 누가 있는지는 사실....이제는 잘 모르겠다. 하기사 이 복잡한 세상에 누가 그런 능력이 있나. 


 실무자들은 그냥 하나의 프로젝트로 손을 털면 그만이지만 세상이 나빠지는 데에 어찌됐건 하나씩 일조하고 있고, 더 비극은 우리 그 누구도 악의를 가지고 행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어즈 & 이어즈>의 명대사를 빌면 캐셔노동자가 하나 둘 씩 사라지기 시작했고 우리들도 사람과 불편하게 이야기하면서 계산하기 싫으니까 그것을 놓아두었고. 그래서 결국 세상은 비비언룩을 뽑고. 그 과정에 무슨 악의가 있는가? 우울하다..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발굴해야 하고 그것을 확대 재생산해야 하고. 그래서 더 크고 더 좋은 것들을 많이 만들어야하고...그 과정에서 정말 쓰잘데기 없고 해로운 것들은 더 많이 생기고. 이게 맞는걸까. 그냥 아주 소극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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