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타기인생 Aug 09. 2020

조선판 스토너

<삶은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은 정약용이 강진 유배시절 길러낸 가장 총애하는 제자 황상의 이야기다.


황상은 조선후기의 문인으로서 10대 때 정약용에게 받은 가르침을 깊이 새기고 실천한 인물이라고 한다. 정계진출은 없이 평생 농사를 지으며 시를 지었다. 말년에 그 시가 추사 김정희 등을 통해 중앙 문단에 소개되며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다만, 사제지간의 미담으로 뭔가 깨달음을 줄 거 같은 책이지만 막상 읽어보니 기대와 많이 달랐다. 중반까지 정약용의 지리한 유배생활과 그 시기 정약용과 주변 인물들이 지은 한시들이 반복되는 것이 주된 원인이다. 그리고 현대의 기준에서 정약용의 언행이나 행동들이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 면모가 많다는 점도 한 몫 한다.


유학자로서의 강팍함, 이를 테면 8년만에 찾아온 아들의 공부를 닦달하는 모습이라던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장례를 간소화한 황상에게 오랑캐라고 비판한 일 등은 시대를 감안해 넘어갈 수 있다 치자. 유배생활 이후 중앙 진출의 꿈에 부푼 제자들을 돌봐주지 못해 반목을 거듭하면서도 '대나무는 언제 보내냐?'라고 재촉하는 모습 등을 보고 있자면 갑질 교수가 생각날 수밖에. 그 와중에 황상은 무골호인에 스승의 가르침을 하늘같이 생각하는 사람이라 산골에 틀어박혀 서신 하나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고...보고 있으면 조금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고 독서의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정작 책이 주는 울림은 다산 사후 황상의 삶에서 나온다. 아름답기보다 삶의 복잡함이 주는 슬픈 울림에 가깝다. 예를 들면 다음의 이야기들을 보자. 황상 말고도 정약용이 제일 아꼈던 제자 중 이학래라는 제자가 있었다. 그는 유배생활 이후 정계 진출을 꿈꿨으나 정약용이 그럴 능력이 없다는 걸 알고 정약용을 비난하고 등을 돌렸던 모양이다.


⠀그러고 나서 이학래는 추사 김정희에 연을 대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섰지만 말년이 되도록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다. 그렇게 이학래는 환갑을 넘기도록 몇십년을 계속 추사의 식객 노릇을 하다가 어느 날 추사를 방문한 황상을 마주친다.


⠀문제는 그 때가 황상이 불세출의 시인으로서 알려지기 시작할때였다는 것. 둘 다 환갑의 나이가 됐건만 스승 말씀을 신주단지 처럼 모시고 조용히 살던 황상은 명성을 얻고, 다산의 무능함을 질타하며 뛰쳐나간 이학래는 식객이 되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정말 서글프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학래는 몇년 후, 일흔살이 되던 해에도 과거에 떨어진 것을 낙심하며 자살한다.


⠀스승을 배반한 인과응보라고 하기에는 잔혹한 것이, 그는 다산의 학문적 성과에 큰 도움을 줬던 제자였고, 추사도 '내 스승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할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었다. 정약용은 공부 스승으로는 좋았을지 몰라도 인생의 선배로서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다산을 끝까지 받들었고, 말년에 시로 이름을 떨친 황상은 끝까지 행복했을까. 안타깝게도 그가 중앙 문단에서 명성을 얻은 것도 잠시, 황상은 고약한 토지소송에 휘말려 자신이 가꿔온 터전을 다 빼앗기고 관아에 불려가 매질까지 당한다. 농사일과 학문에는 꾸준히 힘썼으나, 세상 일 돌아가는 판국에 눈이 어두운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 이후 벗들이 노환으로 하나 둘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며 혼자 또 시를 짓고 공부를 하다가 삶을 마감한다.


⠀책을 덮고 나면 먹먹함과 쓸쓸함이 몰려온다. 이 삶을 뭐라고 해야할까. 기구한가? 뜻한 바를 결국 이룬 삶인가? 아니면 아주 잠깐 반짝였다가 비극으로 마무리 된 삶인가. 그 반짝임과 성취를 위해서 50년 이상을 갈고 닦은 것인가.


⠀황상에 대한 당대의 평들은 '지금 세상에 이런 작품은 없다'고 불릴 정도의 수준이었다고 한다. 명성을 얻었을때도, 자신이 원하는 유유자적한 삶을 일흔이 다되서 꾸렸을때도, 모든 걸 잃고 손자 집에 얹혀 살고 더 이상 자신과 교류할 벗들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때도. 황상은 아마 스승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글을 쓰고 시를 지었을테다. 그는 행복했을까? 행복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책을 읽으면서 했다.


⠀소설 <스토너> 같은 면이 황상과 이학래의 삶에 있다. 인생은 조급해한다고 해서 뜻대로 되지 않고, 안분지족 하여 내실을 기하더라도 어떤 재앙이 들이닥칠지 모른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세파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내 내면의 물결 뿐 아닌가? 그 물결을 만들 수 있는 어떤 순간을 나는 만난 적이 있을까. 문득 쓸쓸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쓸쓸함을 대비하기 위해 읽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