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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Aug 12. 2020

정확한 말과 글은 결국 나를 위한 일.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책의 요지는 간단하다. 한국어에 내 감정을 맡기고 속지 말자는 것이다. 한국어는 고맥락 언어라 화자와 청자 모두에게 너무 많은 눈치를 요구하고 많은 표현들이 뭉뚱그러져 있는 게 문제니까.


기분. 감동. 짜증이라는 단어들. 에둘러 말하기. 질문하듯 말하기. ‘뭘 잘했다고 울어?’와 같은 성립 불가능한 공격적 언사. 폭력을 ‘손찌검’이라는 말로 퉁치는 것. 나의 일에 대해 ‘잡무’ ‘지원’이라고 파교현하는 일 등등...이런 표현들을 그냥 익숙하다는 이유로 자주 쓰고 받아들이기보다 쪼개고 재검토하고 정확도를 높이자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이 눈치사회에서 스트레스를 견디며 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저자는 훨씬 맥락활용이 덜한 영어를 통해 한국어의 그런 고맥락과 공격성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어로는 너무나 뭉뚱그러져 있는 표현들을 영어로 바꿔보면 정확해졌기 때문이다.


그놈의 ‘눈치’ 때문에 고통받아야 했던 많은 한국인들이라면 이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으리라. 무릎을 치며 공감할만한 에피소드와 두고두고 생각해 볼 언어 사용에 관한 통찰력이 책 내내 쏟아진다. 저자는 영어를 통해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있는 한국어의 사용을 돌아보자는 이야기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내가 지금 당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나 상태가 있더라도 그것을 짜증이니 기분이니 하는 말들로 퉁치지 말고 정확하게 표현해보자는 이야기다.그렇게 해야만 우리가 ‘내 언어에 속지 않’을 수 있고. ‘우리 마음의 여러 형태와 온도를 좋거나 나쁜 두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일직선상에 가두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상호 소통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할 수 있기에.

읽는 내내 직장생활 동안 나를 괴롭혔던 어떤 상사들의 뉘앙스와 그것을 계속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나의 내추럴 본 조선인 기질이 떠올랐다. 어릴때부터 남들보다 맥락 파악이 항상 늦었던 나는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더더욱 사는 게 괴로워졌다. 그럼에도 강단있는 마음을 갖지 못한 나는 요즘도 눈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참 자주 한다. 이 단어 자체도 매우 한국어스러운 단어지만...내 이런 기질이 싫고 그냥 마이페이스로 돌파하는 어떤 ‘눈새’의 기질이 너무나 부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거치고 거쳐 나도 지금은 부정확하게 말하고 눈치껏 구는 그저 그런 조선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가 소통할 때 쓰는 표현들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은 지 꽤 된 것 같다. 상대가 눈치껏 알아주길 바란 적도 많다. 안될 일이다. 정확하게 말하고 쓰고 칭찬하고 지적하고 요구하고 사과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지. 책을 읽고 나니 다잡게 된다. 그리고 내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울. 짜증. 쓸쓸이라는 단어로 내 마음을 적어놓기보다는 더 세밀한 관찰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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