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책의 요지는 간단하다. 한국어에 내 감정을 맡기고 속지 말자는 것이다. 한국어는 고맥락 언어라 화자와 청자 모두에게 너무 많은 눈치를 요구하고 많은 표현들이 뭉뚱그러져 있는 게 문제니까.
⠀기분. 감동. 짜증이라는 단어들. 에둘러 말하기. 질문하듯 말하기. ‘뭘 잘했다고 울어?’와 같은 성립 불가능한 공격적 언사. 폭력을 ‘손찌검’이라는 말로 퉁치는 것. 나의 일에 대해 ‘잡무’ ‘지원’이라고 파교현하는 일 등등...이런 표현들을 그냥 익숙하다는 이유로 자주 쓰고 받아들이기보다 쪼개고 재검토하고 정확도를 높이자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이 눈치사회에서 스트레스를 견디며 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저자는 훨씬 맥락활용이 덜한 영어를 통해 한국어의 그런 고맥락과 공격성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어로는 너무나 뭉뚱그러져 있는 표현들을 영어로 바꿔보면 정확해졌기 때문이다.
그놈의 ‘눈치’ 때문에 고통받아야 했던 많은 한국인들이라면 이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으리라. 무릎을 치며 공감할만한 에피소드와 두고두고 생각해 볼 언어 사용에 관한 통찰력이 책 내내 쏟아진다. 저자는 영어를 통해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있는 한국어의 사용을 돌아보자는 이야기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내가 지금 당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나 상태가 있더라도 그것을 짜증이니 기분이니 하는 말들로 퉁치지 말고 정확하게 표현해보자는 이야기다.그렇게 해야만 우리가 ‘내 언어에 속지 않’을 수 있고. ‘우리 마음의 여러 형태와 온도를 좋거나 나쁜 두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일직선상에 가두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상호 소통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할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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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직장생활 동안 나를 괴롭혔던 어떤 상사들의 뉘앙스와 그것을 계속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나의 내추럴 본 조선인 기질이 떠올랐다. 어릴때부터 남들보다 맥락 파악이 항상 늦었던 나는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더더욱 사는 게 괴로워졌다. 그럼에도 강단있는 마음을 갖지 못한 나는 요즘도 눈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참 자주 한다. 이 단어 자체도 매우 한국어스러운 단어지만...내 이런 기질이 싫고 그냥 마이페이스로 돌파하는 어떤 ‘눈새’의 기질이 너무나 부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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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회생활을 거치고 거쳐 나도 지금은 부정확하게 말하고 눈치껏 구는 그저 그런 조선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가 소통할 때 쓰는 표현들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은 지 꽤 된 것 같다. 상대가 눈치껏 알아주길 바란 적도 많다. 안될 일이다. 정확하게 말하고 쓰고 칭찬하고 지적하고 요구하고 사과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지. 책을 읽고 나니 다잡게 된다. 그리고 내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울. 짜증. 쓸쓸이라는 단어로 내 마음을 적어놓기보다는 더 세밀한 관찰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