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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Jan 13. 2017

목구멍과 자아실현 사이에서 핀 꽃

[내 아버지들의 자서전] 을 읽고 쓰다.

  당신에게 노동은 무슨 의미인가. 노동은 목구멍이 내린 명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세계가 있다. 이 풍경이 우리의 일상이다. 먹고 살기 위해 혹은 이제는 필수가 되버린 사치를 위해 우리는 하기 싫은 일을 견디며 시간을 죽인다. 그런 일 조차도 하지 못해 자신을 자책하는 이들이 세상에 가득한 시대다. 

  목구멍의 세계 건너편엔 노동이 자아실현과 수련의 장인 세계가 있다. 이 풍경은 잡스나 테슬라를 꼭지점으로, 미디어에서 각광받는 경영 구루와 스타트업 천재들이 빛을 뿜는 세계이다. 그러나 이 세계는 행인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방망이를 끝까지 깎는 노인의 세계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그 노인에게 영광이나 부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내 아버지들의 자서전>은 목구멍의 명령으로 일을 시작해 방망이 깎는 노인의 경지에 다다른 우리 시대의 숭고한 장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한때 우리 주변에 흔히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져가는 노동의 일대기를 담아냈다. 세탁소, 전파사, 시계수리점, 표구사, 양복점 주인들과 진행한 인터뷰 속에 그들이 택한 노동의 시작과 현재가 담겨 있다. 어떤 이들은 사회에서 인정받는 장인이 됐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평생 유지하던 가게를 그만두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현재 모습이 어떻건, 책 속의 이들은 불우한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세대다. 그래서 노동의 시작점이 똑같다. 목구멍의 명령에 따라 노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선가 그 일을 더 잘하고, 소명의식을 갖는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담금질해왔다. 아마 노동의 자율성과 생산성. 고성장 시대의 효율적인 과실이 그들이 장인이 될 수 있는 길을 터줬을테다. 그런 배경을 고려하더라도 우리는 책을 읽으며 인간답게 사는 일과 노동의 불가피한 관계를 깨닫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통제하고, 원하는 노동을 할 때만이 더 인간다워 질 수 있다. 거기에 진짜 삶이 있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주인공들이 흔히 말하는 '노동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은 기술을 가진 자영업자이고, 동시대의 임노동자보다 훨씬 많은 자율성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래서 작가가 이들의 노동을 돌아보며 '우리는 노동에 아무런 소명의식도 없는게 아닌가' 라고 말하는 일. 노동을 성찰하겠다 말하는 일은 내게는 반쪽짜리 성찰로 느껴진다. 책은 잘 나가다가도 악용되기 쉬운 인식을 노출한다. '그러니까 너도 니 일에 자부심과 소명을 가져!' 라는 인식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가치에 비하면 그런 이야기는 덮어놔도 좋을 만한 사소한 단점일 뿐이다.

  원하는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인내심. 세상이야 어떻든 자신의 리듬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 자신의 세계를 자신이 하는 일에서 구축하고자 하는 바람. 주어진 조건을 극복하고 무언가를 꾸리고 만들고자 경주한 노력. 이런 인간다운 가치들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그 가치는 다림질을 하는 김영필씨의 얼굴을 하고, 양복을 재단하는 임명규씨의 손과, 날림으로 일할 수 없다는 손용학씨의 목소리를 빌어 한 인간의 모습을 띄고 나타난다. 그 사람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말이 안통하는 옛날 꼰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본다면 위대한 장인이며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의 삶을 꾸려온 사람이다. 그렇다면, 한번 만나 볼 만한 매력적인 사람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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