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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Feb 03. 2017

노예가 노동자보다 낫다

<나는 오늘 사표 대신 총을 들었다>를 읽고 쓰다.

1989년 9월 14일, 동료들에게 "록키"로 알려진 조셉 웨스베커가 피로 얼룩질 반란의 도화선에 무심코 불을 붙였다


  마크 에임스의 <나는 오늘 사표 대신 총을 들었다>는 미국의 직장/학교 내 대량살인 사건에 대한 탐사보도물이다. 저자는 미국에서 80년대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직장/학교 내 살인 사건의 근본 원인으로 레이건 정부 집권 이후 도입 된 각종 긴축 정책과 사회복지망의 붕괴, 그로 인한 사회 분위기의 변화를 지목한다. 사회안전망이 사라지고, 노동자의 권익이 약화되고 기업의 경쟁이 격화된다. 긴축정책의 이득은 거대기업과 상류층의 몫이 되고 중산층 이하의 삶은 나날이 악화된다. 이로 인해 미국 사회의 스트레스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대한다.

  기업 내에서 저성과자나 부적응자라고 딱지를 붙인 이들에 대한 왕따와 괴롭힘이 심화된다. 학교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발생한다. 레이건 정부 이후 공교육 예산이 급격히 축소되고 교육의 질이 낮아진다. 사회의 전반적인 경쟁 분위기와 맞물려 학교 내의 분위기도 약육강식으로 재편되면 왕따와 괴롭힘의 강도가 높아진다. 그리고 결국 직장/학교에서 견디지 못하게 된 이들이 대량살인을 저지른다. 이런 류의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을 '이해한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때문에 저자는 대량 살인이 일어날 때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살인자의 프로파일링 아니라 어떤 직장/학교가 대량살인을 유발하는지, 직장과 학교에 대한 프로파일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미국의 노예제도와 현재의 직장/학교생활을 비교하는 대목이다. 저자는 노예제 사회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가혹한 학대,착취'는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노예제 하에서 노예의 반란 사건 또한 우리 생각과 기대에 비해서 너무나도 적게 일어났다는 점도 언급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노예제 자체의 폭력성과 모순이 너무 컸기에, 어쩌다 한번씩 노예의 반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당대 사람들은 노예들의 반란을 제도의 폭력성에서 찾지 않고 "싸이코패스적인 범죄"로 취급하곤 했다는 것이다. 마치 지금 우리가 미국의 뉴스에 나오는 대량살인자를 싸이코패스로 취급하듯 말이다.

  저자의 비교에 따르면, 이런 상황은 마치 현대의 직장/학교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러 면에서 봤을때 현대사회의 직장생활/학교생활이란 너무나도 가혹한 측면들이 많다. 동료들과의 유대관계는 희미하고, 경쟁은 격화돼 언제 밥그릇이 끊길지/인생의 낙오자가 될 지 모른다는 공포가 직장과 학교를 지배한다. 조금 특이하거나 눈 밖에 난 이들에 대해서는 여러 괴롭힘과 따돌림이 가해진다. 사람들은 힘든 티를 내면 참을성 없는 한심한 인간이라는 취급을 받을까봐 자신의 힘든 점을 함부로 내색하지 않는다. 이러한 폭력에 상시 노출된 이들이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면 그는 바보거나 세상에서 힘든 일을 겪어본 적 없는 이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통은 누구나 당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직장과 학교에서 일으킨 살인은 노예제 시대의 '반란'과도 같으며 후대에는 지금과는 다른 평가를 내리게 될 것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사회에 어떤 죄악이 발생했을때,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 죄악을 괴물의 것으로 치부하고 우리가 몸 담은 공간과 제도는 순수한 것으로 남겨놓으려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죄악은 결국 우리가 몸담고 있는 그 곳에서 태어남을 알려준다. 이 책은 미국의 이야기지만 책을 읽은 이들이라면 이 이야기가 미국을 넘어서는 이야기라는 걸 느끼게 된다. 아직 이런 종류의 대량살인이 본격적으로 일어나지 않았을 뿐, 한국에서도 사회를 궤멸적인 상황으로 몰아넣을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누적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느끼고 있지 않은가. <나는 오늘 사표 대신 총을 들었다> 에 나온 사건들은 아마도 우리 사회의 가까운 미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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