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타기인생 Sep 04. 2020

요요. 인스타그램. 스마트폰.

20년동안의 변화상.

 내 세대의 요요하는 사람들 만큼 IT 발전으로 변한 세상을 실감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내가 1999년에 요요를 시작했을 때, 요요를 가장 먼저 접했던 채널은 만화잡지 -> PC통신이었다. 만화 잡지에서 요요 만화를 연재중이었는데, 거기에 PC통신 하이텔 요요동아리(go yoyo)소개 페이지가 있었다. 모뎀으로 01410에 접속해서 게시판 글들과 오프라인 모임으로 요요를 배우기 시작했다.


 인터넷은 많이 활성화되고 있었지만 완전한 메이져는 아니었고, 취미의 주력 세대인 1525는 여전히 PC통신에 많이 몰려 있었다. 거기다가 당시에는 요요도 그렇게 고성능이 아니었고 (3분 이상 슬립타임이 나오면 고성능이었다) 기술도 심플했기 때문에 어느정도 글로 커버하는 게 가능했다.

그렇다 해도 오프라인 모임은 필수였다. 복잡도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동아리에서 대면강습을 거치지 않고는 기술을 익히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영상의 촬영과 공유가 어려우니 전국 대회는 촬영해서 CD로 구운 다음 판매하거나 공유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001년 쯤을 전후해서, 요요성능과 인터넷이 발전함에 따라 기술을 영상으로 찍어서 공유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해외 주요 대회 영상이 2주 내로 업로드 되기 시작했고, 클립비디오를 만들어서 자신이나 크루의 기술 모음을 올리는 일이 잦아진다. 당연히 해외에서 한국으로의 기술 전파 속도도 빨라졌는데, 그때 한국도 한번 세계대회 짱을 먹었으면 좋았겠지만....이미 인프라가 구축이 많이 되어있는 해외 커뮤니티들의 속도가 더 빨랐기에 커뮤니티 간 격차가 막 엄청나게 좁혀지지는 않았다. 


 사실 그 시절도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느렸다. 영상 장비가 많이 보급되지 않았고, 인터넷 속도도 그리 빠른 편이 아니어서 영상을 찍고 올리려면 수일의 시간이 소요됐다. 영상을 웹에서 스트리밍 할 수 있는 기술은 초기 단계였고, 실시간으로 영상을 볼 수 있는 기기도 없기 때문에 다운로드 + PC 사용은 항상 필수였다. 돈이 좀 많으면 pmp 기기를 사서 요요영상을 넣어서 볼 수야 있었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었다. 물론 99년의 PC통신 시절에 비하면 호시절이었지만.

 그렇게 또 몇년이 지나고 나서, 요요 커뮤니티를 바꿔 놓은 세가지 기술이 나타났다. 첫번째 스마트폰의 카메라 성능 고도화. 두번째 스트리밍과 초고속망 활성화. 세번째 인스타그램 유행. 나는 요요의 성능이 올라가고, 기술이 복잡해지고...이런 것들은 이 세가지 변화에 비하면 정말 사소한 문제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이 세가지가 어디 요요만 바꿔놨을까. 하지만 아무래도 오랜 시간 몰두해 있는 취미다 보니 이 세가지가 어떻게 커뮤니티를 바꿔놓았는지 생각해 보는 일은 '유튜브가 세상을 바꿨습니다~'라는 두루뭉실한 이야기를 읽는 것 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측면이 있다.



 우선 스마트폰 카메라가 좋아지면서 영상을 언제 어디서든 일정 퀄리티로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기술을 찍는 게 아무리 인터넷이 좋아도 쉽지 않았다. 피쳐폰의 카메라는 요요영상을 찍을 정도가 아니었다. 캠코더나 디카가 흔한 기기가 아니라서 커뮤니티에서 영상을 찍어주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다. 심지어 캠코더는 테잎 쓰던 시절이라 찍고 옮기고 코딩하고 하면 리소스를 너무 많이 썼고 그래서 제대로 된 걸 찍는 게 아니면 찍을 일도 없었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고도화 되면서 이젠 언제 어디서건 영상을 찍는게 쉬워졌다. 오늘 내가 연습한 결과가 좋다? 바로 스마트폰 키고 찍으면 된다. 커뮤니티에서 크루들이랑 놀다가 재밌는 기술이 나왔다? 찍어달라고 하면 된다. 아이폰 3gs 광고를 처음 봤을 때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저걸로 요요 영상 찍으면 되겠는데?' 였으니 말 다했지.


 그런데 이 찍은 영상을 올리고 알릴 곳이 없다면 이렇게까지 영상 찍는 게 편해질 이유가 없다. 내가 평행우주에 유튜브+인스타+스마트폰 중 하나만 있는 우주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서로가 서로에 엮여있다.

초고속망 + 스트리밍 기술이 발달하며 영상을 찍고 올리는 일은 문자 보내는 일 만큼 쉬워졌다. 이제는 기술을 찍어서 카톡으로 한번 돌리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유튜브에도 올린다. 특히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인스타그램이다. 나는 유튜브보다 인스타그램이 요요 커뮤니티에 끼친 영향이 훨씬 크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요요 커뮤니티에서 유튜브의 역할을 하는 곳은 지난 20년간 계속 있었다. 대회와 클립비디오 등을 보는 곳 말이다. 그곳이 옛날에는 인터넷 잘되는 오프라인 센터였고, 이후에는 섹터와이나 야마18 같은 해외 사이트였으며, 어느 시점에는 유튜브가 되었다.

물론 유튜브가 이전과 비교도 안되게 빠르고 편해진 부분은 있으나, 유튜브에서의 요요 콘텐츠 소비란 사실 그렇게 새로운 형식은 아니란 이야기다. 그리고 플랫폼 특징 상 어느정도 퀄리티가 있어야 보기가 편한 곳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운영/조회/반응이 무겁다.


 요요 커뮤니티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콘텐츠는 결국 기술영상이다. 이를 공유하고 소비하는 데 있어서 인스타는 유튜브보다 훨씬 많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왜? 형식이 항상 내용을 결정한다. 정방형 혹은 4:5의 제한된 프레임과 1분 내의 짧은 시간이 요요 기술 영상을 올리기에 너무나 최적화되어 있는 형태인 것이다.

또, 요요를 배우는 것은 상당 부분 '자랑'에 포커싱이 될 수밖에 없는데, 모두가 알다시피 인스타그램만큼 자랑에 좋은 플랫폼은 없다. 그런 맥락에서 조회자의 피드백이 즉각적인 플랫폼이기도 하다. 콘텐츠를 보기도, 좋아요를 누르기도, 댓글을 달기도 너무너무 쉽다. 글로벌로 확산하기도 훨씬 용이하다.


사진은 trickcircle이라는 해시태그인데, 요요인들이 자신의 기술을 공유할 때 붙이는 태그이다. 저 태그로 만들어진 포스팅의 수가 유튜브에 공유된 요요영상의 수의 수십 수백배는 될 것이다.


 그래서 요즘 시대에 요요를 잘하는 한국선수들은 상당히, 매우, 많이 글로벌화 되어있는데, 여기에는 해외여행이 훨씬 쉬워지고, 커뮤니티의 전반적인 실력이 올라간 점도 영향을 끼쳤겠으나 나는 인스타그램의 영향을 더 생각해보게 된다. 팔로워 수백명 중에서 상당수가 해외 선수들이고, 자신이 올리는 인스타그램 영상에 한글/영어 댓글이 뒤섞여 있는 경험 하에 실력을 키운 선수들이 국내만 바라보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다.


 손 안의 기기를 키면 내가 보고 자극받고 연습하고 참고할 수 있는 10만개의 영상이 뜨는 시대다. 우리 때는 이러한 교류의 기회 자체가 너무나 없었다. 예전에는 해외 선수와 교류하는 일은 연간 한두번 있는 이벤트였지만 지금 요요인들은 인스타 라이브, DM, 댓글등을 통해서 끊임없이 교류하고 발전한다.


나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기술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지만, 해온 세월 때문인지 이 변화가 참 신기하고 아찔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빠르게 기술을 찍고, 공유하고,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시대에 요요를 하는 세대와, PC통신 혹은 인터넷 커뮤니티 시절에 요요를 시작해 이제 10년 20년이 지난 세대가 바라보는 요요는 과연 같은 의미일까? 객관적인 시장의 규모와 상관없이, 그렇지 않을 거란 생각을 요즘 많이 하게 된다. 자신이 글로벌의 일부라고 느끼는 이들에게 '로컬만의 개성을 만들자'라고 하는 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다만, 그 변화 속에서도 결국 불변하는 포인트들이 있다.어느 플랫폼에 노출하건 간에 요요는 결국 자신이 일정 시간을 들여서 체득해야 하고, 자신이 익힌 기술을 대회건 비디오건 자랑하는 데서 기술의 습득이 완료되는 활동이다. 이 점은 아마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본질적인 부분들을 표현하는 창구와 속도가 판이하게 달라졌을 뿐이지.


 그렇게 보면, 사실 어떤 활동의 본질을 정하는 순간은 초기의 아주 짧은 순간이고 이후는 그 본질이 표현양식만 바꿔가며 세태에 적응하는 것 뿐이다. 문제는 그 와중에 양자를 구분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에 있다.

이 작은 커뮤니티에서 변하는 것들에 맞춰 본질적인 것들이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아는 것도 시간이 이리 걸리는데,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의 시대에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건 어디까지 유효한가...그런 생각이 든다. 뭐든 그렇듯 가변과 불변을 파악하는 것이 제일 어렵고 중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