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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Sep 21. 2020

왜 이렇게 주 52시간을 못잡아먹어서 안달인가

 요즘 유튜브로 tv손자병법을 보고 있다. 87년에 시작한 직장 시트콤/드라마라 그 당시의 문화와 사고들을 볼 수 있는 아주 재밌는 자료이기도 하다. 2화를 보면 주5일 근무제에 대한 당시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유비 대리(서인석)가 연말을 앞두고 근무시간 단축을 희망하며 상사에게 ‘미국이나 영국은 금요일이 되면 ‘신이시여! 금요일입니다’라고 좋아하며 파티도 하고 한다는데요. 명절을 앞두고 좀 단축하면 어떨까요...’라고 넌지시 제안한다. 거기에 대해 과장은. 아니 그렇게 주 5일 해서 언제 일을 하고 언제 선진국을 따라잡습니까? 라며 호통을 친다. 유비와 동료들은 머쓱해하며 ‘그건 그렇죠’라는 식의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로부터 3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토요일에 쉬질 못하고 있는 건 둘째치고 (,  주52시간제를 두고도 쓸데없는 이야기들만 오고가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 5년동안 나머지 34%가 채워졌을까?





 링크한 양향자의 발언을 보는 내 기분이 딱 지금 2020년에 손자병법 1화를 보는 그런 기분이다. 아직도? 또? 역시 삼성 출신은 답없다? 노동시간 규제를 풀자는 이야기는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장기매매, 성매매, 아동노동을 양성화하자는 얘기랑 거의 비슷하다. 사회의 안정과 인간의 권리를 위해 유지되어야 할 최소한의 장치들을 ‘누군가는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그리 다르지 않다.  

 특히 노동시간에 관해서는 정말 대기업 임원 출신들이나 약간 철모르는 스타트업러들이 유독 이런 식인데 예전 구글 코리아 매니져 출신. 무슨 게임회사 이사도 비슷한 얘길 했었다. 워라벨은 별로 좋은 삶의 태도가 아니고 그러면 성취가 없고 경쟁력이 없고 어쩌고 저쩌고....나는 이들이 특별히 악랄하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경험을 못벗어나는 편협한 이들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들은 노동시간이 늘어날수록 데미지가 더 심해지는 일도 해본 적이 없고, 노력=개선으로 이뤄지지 않는 영역도 있다는 상상을 잘 못하는 것 같다. 성공가도를 달려서 그런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장시간 노동이 주변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도 잘 모르는 거 같고. 싼 값에 무제한 혹사당하는 게 뭔지도 잘 모르는 거 같다. 아마 그렇게 혹사당하는 건 ‘노오오력’을 안해서라고 생각하려나?



 때문에 이들이 아무리 나보다 회사생활 오래하고 능력 쩌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나는 이 작자들이 참 세상물정 모르는 인간들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그냥 기업에서의 일만을 생각해보더라도 현장에서의 모든 노동은 그렇게 대기업 임원과 자기계발을 목표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목표가 아닐지라도 각자의 실무는 각자의 생산성과 이유를 가지고 굴러간다. 모두가 님들처럼 성공종자강박으로 살진 않아요...


 무엇보다. 이러한 법들은 우선적으로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곳을 보호하고자 하는 법이다 52시간 제한이 풀리면, 그래 삼성같은 대기업이나 스타트업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는 넌 70시간 해 난 52시간 할께. 이럴 수도 있겠지. 체계가 있는 회사면 초과노동 보상도 어느정도 이뤄질테고. 아니 근데 52시간이 왠말이야. 이것도 초과노동 포함한 얘긴대 주 52시간씩 일하면 사실상 7일 출근이다. 8시간 노동이 아니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삼성도. 카카오도. 스타트업도 아니다. 가뜩이나 사람 값이 싼 한국에서 장시간 노동은 다시 여러 형태로 강제되고 초과노동에 대한 보상은 또 유야무야 될 것이다. 최소한의 노동법도 적용이 안되는 예외대상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은 오늘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이 경향에 쓴 오피니언의 내용(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 을 이들은 알고 있을까? '라이더 연봉 1억원'보도를 보고 라이더가 늘자 쿠팡이츠가 단가를 내리고 더 싼 값에 사람을 부려먹고 있다는 실상 말이다. 이게 어디 라이더만 그렇겠는가. 한국사회 노동 대부분이 꽤 오랜 시간 이런 상황에 처해있고, 상황은 더 안좋아지는데 해법이 '일을 더 하게 해주자'라니.


 생계가 어려워서 일을 더 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정치가 줘야 하는 답변은 초과노동의 형태로 노동자에게 다시 또 책임을 떠넘기는 형태가 아니라 다른 답변이어야 할 것이다. 알아서 살아남도록 하기 위해 하루 8시간도 부족하고 10시간은 쓸 수 있게 하자는 게 경세치용을 업으로 삼는 자들이 할 말은 아니다.


 노동시간을 10시간인가로 줄이자니 ‘근로자들에게 일할 권리를 뺏으면 안돼’라고 자본가들이 궁시렁거린 게 이미 몇백년전의 역사다. 그런데 이 구태의연함과 협소함은 뭘까. 라떼 이즈 홀스라는 말 조차 사치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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